“나만의 ‘미친 가성’ 찾느라 정신 없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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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데스타운’서 오르페우스역 15년차 뮤지컬 배우 조형균
“홀로 기타 치며 노래 장면 위해 같은 배역들과 연습 또 연습”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형균은 지옥의 문을 두 손으로 여는 듯한 몸짓을 취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형균은 지옥의 문을 두 손으로 여는 듯한 몸짓을 취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해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시라노’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며 뮤지컬 배우로 정점을 찍은 조형균(37). 올해 데뷔 15년 차를 맞은 그는 뮤지컬 ‘하데스타운’에서 음유시인 ‘오르페우스’ 역을 맡아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올 9월 7일 개막해 내년 2월 27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에서 연인을 향해 부르짖는 그의 노래는 지옥의 벽마저 허물었다.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좋아하는 마블 영화 시리즈와 ‘하데스타운’의 메시지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극은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계속 딛고 일어나려는 도전에 대해 말한다. 단순히 신화, 영웅,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이라며 작품의 매력을 설명했다.

2019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후 토니상 8개 부문을 휩쓴 작품은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오르페우스는 곁을 떠난 연인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하세계로 향한다. 노래로 지하의 신 하데스를 감동시킨 그는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 조건으로 연인을 데려온다. 하지만 호기심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지상 문턱에서 고개를 돌리고 만다. 조형균은 “나도 모르게 뒤를 따라오는 에우리디케를 돌아보지 않으려 늘 조심한다. 내가 먼저 뒤를 돌아보면 극도 빨리 끝나버리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사실 오디션 때 그는 ‘멘붕’ 상태였단다. 제작진은 지원 요건으로 ‘G#5(3옥타브 솔#)’ 가성을 요구했다. 뮤지컬 판에서 노래라면 빠지지 않는 조형균도 “숱하게 작품을 하면서도 노래해본 적이 없는 고음역대”라며 “첫 공연 직전까지 나만의 가성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기타 연주라는 더 큰 산도 남아 있었다. 정적이 가득한 ‘에픽1’의 한 장면에서 오르페우스는 홀로 기타를 치며 노래한다. 같은 배역의 박강현, 엑소의 시우민과 개막 네 달 전부터 모여 기타 연습에 공을 들였다. 그는 “급하게 중고 거래로 기타를 구해 연습했는데 나중에는 질려서 꼴도 보기 싫었다”며 “리허설 때 한 명이 기타를 치면 다른 둘은 ‘제발 틀리지 말라’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 뮤지컬 ‘찰리 브라운’으로 데뷔한 그는 앙상블 배역부터 묵묵히 치고 올라왔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끈기 있게 버티고 무대를 지켰다. 뮤지컬계에서는 뭐든 믿고 맡길 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주연감’이라는 평이 나온다. 조형균은 “사실 배역이 나와 어울릴지 안 어울릴지 많이 따지지 않고 살았다. 새로운 도전이라면 마다하지 않는다”며 “‘형균이 잘한다’는 말보다 ‘형균이랑 작업하는 게 재밌다’는 말을 들을 때 더 신난다. 관객에게도 좋은 기운을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철저한 낙관주의자인 그는 이번 작품을 하며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삶의 낙을 하나 잃었기 때문. “제 낙인 캔맥주를 끊었습니다. 미칠 듯 가성을 많이 쓰는 이 공연에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하하.”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하데스타운#오르페우스#조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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