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넘치는 MZ세대 “난, 나만의 글씨체를 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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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나 콘텐츠 분위기 따라
넷플릭스 자막 폰트 바꾸고 SNS 글씨체도 내 스타일대로
“작은 변화지만 몰입에 큰 도움”
“온라인서 개인 정체성 드러내고 글씨 자체 즐기는 놀이문화 결합”

주로 보고서에 사용하는 바탕체와 굴림체, 궁서체만 쓴다면. 글자가 뜻만 전하면 충분하지 글씨체(폰트)가 왜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면. 당신은 아마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개성 넘치는 글씨체에 환호하고 인기 폰트의 정보를 활발하게 공유하는 건 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풍경. MZ세대에게 폰트는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명함이자 디지털 상품이 됐다.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제공하는 기본 폰트를 바꾸거나, 유료로 폰트를 구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특수문자와 폰트를 활용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에서 제공하는 기본 글씨체를 변경하고, 기분에 따라 여러 폰트를 사용한다. 디자인 업계도 MZ세대의 늘어난 폰트 수요에 맞춰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색다른 글꼴을 고민하고 있다.

넷플릭스 애청자인 대학생 김대영 씨(27)는 그날 기분이나 콘텐츠 분위기에 따라 자막 글씨체를 수시로 바꾼다. 최근에는 극장에 간 듯한 기분을 내고 싶어 영화관 자막과 유사한 무료 폰트 ‘a시네마L’을 내려받았다. 그는 “콘텐츠 성격에 맞는 폰트를 찾아 사용하는 건 소소한 재미다. 작은 변화지만 몰입에 큰 도움이 된다. 맛있는 음식을 더 멋지게 플레이팅해 즐기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고윤성 씨(25)도 “좋아하는 글씨체로 유튜브, 넷플릭스 자막을 바꿨더니 눈이 편해진 기분”이라고 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 사이트 ‘눈누’나 ‘네이버 소프트웨어 폰트’ ‘산돌구름’ 등에서 폰트를 내려받는다. 별도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때도 있다.

자신의 SNS 프로필을 독특한 폰트로 꾸미고, 휴대전화의 기본 글씨체를 바꾸는 것도 유행이다. 예쁜 폰트를 발견하면 커뮤니티에 캡처 화면을 올리고 “이 폰트 정보 좀요”라고 문의하는 이도 적지 않다. 회사원 박재웅 씨(30)는 “최근 입사지원서 작성 시 SNS 주소를 요구하는 회사들이 많다. 개성 있는 폰트로 공을 들인 SNS는 일종의 명함”이라고 설명했다. 브이로그, 유튜브 등의 콘텐츠나 아이돌 팬덤 굿즈를 만드는 MZ세대에게 폰트는 차별성을 꾀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무료 폰트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은 유료 폰트를 찾아 나선다. 폰트 플랫폼 업체 산돌의 황남위 마케팅팀 PD는 “싸이월드 도토리로 글씨체를 구매하던 당시 폰트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모바일로 매체 환경이 변한 후 매년 20∼30%씩 폰트 매출이 늘고 있다”며 “기업 외에 개별적으로 폰트를 구입하는 고객은 누적 기준 75만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월 4900원을 내고 12가지 스타일, 29종의 폰트를 사용하는 유료 서비스도 내놓았는데 이용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1인 폰트 제작 스튜디오 ‘한글씨’의 김동관 디자이너가 내놓은 폰트 ‘꼬딕씨’도 MZ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폰트를 연구하는 심우진 서울출판예비학교 출판디자인 책임교수는 “온라인 공간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MZ세대의 욕구와 글씨 자체를 즐기는 놀이문화가 결합한 현상”이라며 “중소기업들도 브랜딩을 위해 전용 서체를 만드는 등 향후 폰트 시장은 급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mz세대#개성#글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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