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8대 죄악 저지른 이완용 응징해야” 뒤늦게 전한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7일 1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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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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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희(隆熙) 3년 12월 22일 한국인들은 물론 많은 일본인들까지 깜짝 놀라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융희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연호로 융희 3년이면 1909년이죠.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목숨을 잃기 직전까지 갔던 일이었습니다. 이날 한성부 종현천주교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종현천주교성당은 지금의 명동성당입니다. 행사가 끝난 뒤 이완용이 인력거에 올라타려던 순간 23세 청년 이재명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흉기로 찔렀습니다. 왼쪽 어깨와 오른쪽 등 아래 두 곳을 크게 다친 이완용은 의식을 잃고 피투성이가 된 채 실려 갔죠.

이완용 피습사건이 만 15년 가까이 지난 1924년 10월에 다시 거론된 이유는 자객 중 마지막 한 명이 이때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41세의 중년이 된 이동수였죠. 이완용 습격으로 13명이 재판에 넘겨졌을 때 이동수 등 3명은 몸을 피했습니다. 이동수는 궐석재판에서 징역형 15년을 선고받았지만 용케 계속 숨어 있다가 시효 1년을 남기고 붙잡히고 말았죠. 이완용을 습격했던 이재명은 법정에서 “이완용은 8대 죄악을 저질렀다”며 을사늑약 등을 꼽았습니다. 결국 1910년 9월 교수형이 집행됐죠. 2년 전 결혼한 꽃다운 아내를 홀로 둔 채 떠났죠.

평양 출신 이재명은 1904년 노동이민으로 미국에 갔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07년 정미7조약이 체결되자 서둘러 귀국했죠. 일제는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았고 정미7조약으로는 군대를 해산했습니다. 청년 이재명은 이제 남은 일은 합병이라고 생각했죠. 이때 이완용은 일제에 대놓고 합병을 요청하던 친일단체 일진회를 대국민연설회 등으로 맞불을 지르면서 누르고 있었습니다. 이완용이 합병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던 데다 합병의 공로도 빼앗기지 않으려던 노림수였죠.

이재명은 이완용의 속셈을 꿰뚫어보고 이동수 등 동지를 모아 이완용과 일진회 회장 이용구를 처단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합병을 막는 길이라고 판단했고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에도 용기를 얻었다고 하죠. 이재명과 이동수를 비롯한 3명이 이완용을 맡고 다른 2명이 이용구를 처치하는 식으로 일을 나눴습니다. 나머지 동지들은 자금조달, 무기구입, 정보수집 등을 담당했죠. 하지만 저승 문턱까지 갔던 이완용은 대한의원의 일본인 의사들로부터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치료와 며느리의 극진한 간호를 받아 입원한 지 53일 만에 퇴원했습니다. 다만 왼쪽 어깨를 찔렸을 때 폐까지 다쳐 죽을 때까지 천식을 앓았다고 합니다.

지금 볼 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동아일보가 이완용 피습소식을 상세하게 보도한 일이었습니다. 이동수가 붙잡혔다는 1924년 10월 20일자 1단 기사를 시작으로 ‘연명한 이완용과 미결수 이동수’ 소제목으로 4회, ‘구생(苟生)한 이완용과 교살(絞殺)된 이재명’ 소제목으로 6회 기사를 연재했죠. 총 10회로 이완용 피습의 전후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죠. 15년 전 대한협회 기관지였던 대한민보의 당시 기사를 그대로 지면에 옮겨 싣기까지 했습니다. ‘그때의 여론을 대표하는 신문이 그 사건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보여준다는 취지였죠. 이동수의 재판을 앞둔 1925년 2월에는 대한민보의 이재명 재판기사를 5회로 묶어 게재했습니다.

특히 10회 기사를 연재할 때는 15년 전 사건을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현장감 넘치게 전했습니다. 이완용 피습장소 주변의 목격자와 대한의원에서 일했던 의사까지 수소문해 증언을 실었죠. 동아일보는 때 지난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일반의 기억을 새롭게 하기 위해’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 짧은 구절에는 ‘나라를 빼앗긴 잘못을 되풀이하자 말자’ 또는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을 반드시 응징하자’는 의지를 새롭게 다지자는 숨은 뜻이 담겨 있지는 않았을까요? 참, 이동수는 2심에서 징역형 2년의 집행유예 3년을 받았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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