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때 바둑판 들고 상경…‘영원한 국수’ 김인 9단 타계

뉴스1 입력 2021-04-04 15:07수정 2021-04-04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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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지병으로 별세한 ‘영원한 국수’ 김인 9단. (한국기원 제공) © 뉴스1
한국바둑의 세계화에 기여한 김인 9단이 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날 영면한 김인 9단은 바둑계에서 ‘영원한 국수’로 통했다. 올드팬들은 김인 9단을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의 아성을 무너뜨린 기린아로 기억하고 있다.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23세의 김인은 당시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조남철에게 3-1로 승리하며 국수 타이틀을 쟁취했다. 현대바둑 사상 첫 세대교체였다.

1943년 전남 강진 바닷가에서 태어난 김인은 13세 때 바둑판을 안고 야간열차로 혼자 상경했다. 원로 김봉선과 아마 고수 이학진을 사사한 김인은 15세인 1958년 프로가 됐다. 19세 되던 1962년 제6기 국수전에서 조남철에게 도전한 김인은 1승 1무 3패로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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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전이 끝나고 나흘 뒤인 3월 9일 김인은 일본 유학길에 올라 기타니 미노루 문하생이 됐다. 이후 김인은 기타니 도장 사범 시절 조치훈을 지도하기도 했다.

김인은 1963년 11월 스승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본 생활 20개월 만에 귀국했다. 엄격하고 규율이 강한 기타니 도장 생활이 자유분방한 성격의 김인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국한 김인은 이후 국수 6연패, 왕위 7연패, 패왕 7연패 등 국내 전 기전을 휩쓸었다.

1978년 김인은 13기 패왕전과 4기 기왕전에서 각각 조훈현, 김희중에게 패하며 마지막 타이틀을 잃었다. 이후 김인은 타이틀 획득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목이 수려하고 기품 있는 김인의 대국 태도는 팬들을 매료했다. 중후한 기풍을 지닌 김인은 상금과 대국료로 가난한 동료들에게 밥과 술을 많이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백남배라는 타이틀전은 김인이 타이틀을 잃자마자 사라졌다. 대회 스폰서였던 모대학 이사장이 오직 김인만을 위해 만들었던 대회였기 때문이다.

바둑이 지닌 도의 가치를 고수했고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한 김인 9단은 TV바둑이 바둑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고집스레 참가하지 않았다. 후배들은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을 변치 않는 청산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김인 9단은 15세의 나이에 프로에 입단, 63년간 한국기원 전문기사로 활약하며 1568전 860승 5무 703패의 통산전적을 남겼다.

1968년 작성한 40연승은 현재까지 한국기원 최다연승 1위 기록이며, 67년 승률 88.1%(37승 1무 5패)와 68년 승률 87.72%(50승 7패)는 연간 최고승률 3위와 4위 기록으로 남아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옥규 씨와 1남이 있으며 발인은 6일 오전 10시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이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추모공원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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