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스님 “입을 열기도, 닫기도 어려운 세상… 중도의 지혜 찾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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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맑은 가난’ 낸 선행 스님

최근 에세이 ‘맑은 가난’을 출간한 선행 스님. “맑고 가난한 마음을 지키고 가꾸는 것이 수행”이라는 게 스님의 말이다. 담앤북스 제공
최근 에세이 ‘맑은 가난’을 출간한 선행 스님. “맑고 가난한 마음을 지키고 가꾸는 것이 수행”이라는 게 스님의 말이다. 담앤북스 제공
16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에 들어서니 봄볕에 활짝 핀 매화가 맞이한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수상하지만 산문(山門) 안의 봄은 한결 보기 편하다. 포교국장을 맡은 선행(禪行) 스님의 처소에 들어가니 한쪽에 클래식 기타가 있다. 법문 때 흥이 오르면 가요 한두 곡 구성지게 ‘뽑는’다는 스님. 충남 공주시 마곡사 아래 우체국에서 근무하다 출가했다는 그와 차담을 나눴다. 최근 선행 스님은 절집 수행자의 삶과 자신의 사연을 발심, 기도, 정진, 수행 등 4개의 장으로 엮은 에세이 ‘맑은 가난’(담앤북스)을 출간했다. 2011년 나온 그의 책 ‘선객(禪客)’은 경전류를 다뤄온 동국대 출판부가 처음으로 낸 에세이로 기록돼 있다.

―기타는 언제 배웠나.

“10년 전 ‘선객’ 출간 뒤 탈진했는지 뭐가 손에 안 잡히더라. 몇 년 전 문화강좌를 통해 기타를 접했다.”

―펼쳐진 악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그 노래가 기본 코드를 익히는 데 좋다. 아침 공양 뒤 기타를 잡으면 스님들이 좋아한다. 속세 사랑이나 부처님 사랑이나 모두 쉽지는 않다. 하하.”

―‘맑은 가난’에 개인사를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 많다. 부담스럽지 않았나.

“살아온 얘기인데 무슨 부담이 있겠나. 네 살 때부터 조부모님 곁에서 자랐다. 일찍 철이 들었는데 모든 게 인연으로 연결되더라.”

법대에 낙방한 스님은 입시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 9급 우정공무원이 됐다. 마곡사 아래 우체국에서 4년간 근무한 그는 인근 은적암에 있던 비구니 성호 스님과 인연을 맺었고 1985년 진철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통도사 강원과 율원을 거쳐 여러 선원에서 참선했고 백양사, 선운사 강주(講主·경전을 가르치는 책임자)를 지냈다.

―성호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속세로 치면 어머니 같은 분이었다. 그분과의 인연으로 불교를 알게 됐고 출가까지 하게 됐다. 백양사 강주로 있던 2008년 입적(入寂·별세)하셨다.”

―조계종 종정과 통도사 방장을 지낸 월하 스님의 발우 시봉을 2년간 했다.

“방장 스님은 공사가 분명하고 강직한 분이었다. ‘출가해 잘못 살면 세속과 승가 모두에 죄를 지는, 양가득죄(兩家得罪)’라고 했다. 평생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

―출가 뒤 번뇌는 없었나.

“출가 뒤 하루 잤는데 이전 삶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했다. 삭발하면서 눈물 흘리는 이도 있었는데, 난 싱글벙글했고 지금도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 부처님 제자로 살아가는 게 체질이다.”

―‘맑은 가난’이라는 책 제목은 어떻게 지었나.

“분향세발과여생(焚香洗鉢過餘生), 향 피워 예불하고 발우로 공양하고 여생을 보낸다. 그런 삶에 더할 게 뭐가 있겠나.”

―지나치게 소박한 것 아닌가.

“사찰 강주도 해 봐서 더 큰 소임에 집착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산문 밖 삶이 어렵다.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들려 달라.

“화두에 ‘개구즉착 폐구즉실(開口卽錯 閉口卽失)’이라고 했다. 입을 열면 그르치고, 입을 닫으면 잃게 된다. 치우침이 없는 중도(中道)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좋아하는 경전 구절을 들려 달라.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元功德母), 믿음이 도의 으뜸이고 공덕의 어머니다. 승려 생활은 하다못해 ‘말뚝 신심’이라도 있어야 지탱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런 마음가짐이 흐트러질 수 있는 삶을 바로잡을 수 있다.”

인연이 닿으면 그때, 스님의 기타 반주에 맞춘 노래를 듣기로 했다. 매화 향기 속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리라.

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에세이#맑은 가난#선행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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