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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기적을 꿈꾸게 하는… 재럿의 ‘밤의 멜로디’

입력 2020-11-09 03:00업데이트 2020-11-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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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8일 일요일 맑음. 피아노 없는 삶.
#337 Keith Jarrett ‘I Got It Bad and That
Ain't Good’(1999년)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앨범 표지.
임희윤 기자
2011년 6월 2일 저녁, 에스프레소 샷이 3개나 들어간 카페라테를 들고 향한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재럿(75)의 독주회장.

동행한 음반사 대표인 M 씨는 클래식을 전공한 재럿 마니아다. 그가 푸는 재럿에 관한 장광설을 들으며 객석에 앉았다.

“이 양반(재럿)이 얼마나 ‘돌아이’냐면, 일본 공연 때는 늘 똑같은 호텔의 똑같은 호실에 묵는대요. 버클리음대에 다닐 때 공용 연습실 피아노를 제멋대로 순정률(純正律)로 조율했다가 쫓겨났다는 얘기도 있지.”

이내 암전. M을 향해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다급한 속삭임이 날아왔다.

“저기요. 손목시계 좀 풀어주시겠어요?”

발화자는 바로 뒷줄 청년. 초침 소리로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진짜 마니아의 등장에 우리의 ‘재럿 권위자’는 머쓱해져 시계를 주머니에 박아 넣었다.

재럿은 특유의 난해한 즉흥연주로 본 공연을 이끌었다. 앙코르에서 객석이 큰 흥분에 싸였다. ‘Don‘t Ever Leave Me’ ‘I Loves You Porgy’…. 익숙한 멜로디가 흐를 때마다 여기저기서 낮고 깊은 탄식이 터졌다.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들어왔다. 냉정하기로 소문난 M의 안구가 젖어 있었다.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앨범에서 앙코르 곡들을 해주는데 정말 눈물 날 뻔했어. 아, 이 공연, 미쳤어.”

‘The Melody at…’은 재럿의 1999년 작이다. 만성피로증후군과 싸우던 재럿이 아내에게 줄 성탄절 선물로 자택에서 녹음한 것. 앉아 있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겨우 마이크 한 대 설치한 뒤 머리에 떠오르는 스탠더드 선율을 큰 변주 없이 연주한 음반이다. 재럿의 옛 인터뷰에 따르면 “건강이 나빠 선물을 사러 외출하지도 못할 정도였기에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선물을 생각해냈다”고. 주변에서 설득해 공식 음반으로 공개했다.

평단 일각은 소품으로 치부한다. 허나 이 앨범은 단순한 아름다움의 극점이다. 드립으로 유명한 바리스타가 타준 믹스커피 같달까.

최근 재럿이 한 인터뷰에서 2년 전 좌반신 마비가 와 정상적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오른손만이 자유로운 상태라고.

어느새 연말이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상상한다. 밤의 멜로디를 들으며.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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