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토지세 30% 일방 인상…돈 없으면 집이라도 팔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1일 11시 40분


코멘트

1922년 1월 25일



플래시백

조선총독부가 1922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토지세를 30% 올립니다. 땅값이 1000원이라면 13원이던 토지세가 17원이 된 것이죠. 지금 가치로 13만 원에서 17만 원으로 오르는 셈입니다.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긴 했지만 식민지 운영자금은 넉넉하지 않았죠. 본국에서 보내오는 돈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식민지 조선에서 세금을 올리는 방법을 쓰게 됩니다. 문제는 납세자인 조선인들에게 세금 올려도 되겠느냐는 의견을 묻지 않았다는 점이죠. 올려도 일본의 토지세보다는 싸지 않느냐고 방패막이를 할 뿐이었습니다.

동아일보는 총독부의 증세에 반대한다고 선언했습니다. 1922년 1월 25일자 1면 사설은 제목부터 『토지세 증가에 반대한다』였죠. 증세 배경, 지출 분야, 담세 능력, 경제 발전 같은 말은 듣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납세자인 조선인들의 승인을 받았느냐는 점이라고 지적했죠. 현대 문명국들의 정치는 국민이 정치에 참여해 자발적인 의사로 결정하고 이 결정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지는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꾸짖었습니다. 일부 관료가 멋대로 증세를 결정하는 것은 납세자의 권리를 모독하는 일이라고도 했죠.

당시는 총독부가 예산안을 세우면 일본 내각이 검토해 결정하고 일본 의회에 제출해 승인을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조선인은 부당함을 따질 통로가 없고 오직 결정에 따라야 할 뿐이었죠. 세금을 낼 돈이 없으면 집이나 솥이라도 팔아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1922년 12월 경성부는 체납자의 가재도구를 차압하면 출장에, 운반에 번거로우니까 부동산을 차압한다고 했죠. 조선인은 납세에 관한 한 아무런 권리가 없었고 의견을 제출할 길도 없었죠. 제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문화정치를 내세우면서 1920년에 부협의회, 면협의회, 도평의회라는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했지만 의결권 없는 자문기구에 불과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운영됐죠.

1923년 9월 경성부가 세금을 내지 않은 집에서 가져온 솥과 그릇 등 갖가지 가재도구를 떨이로 처분하는 모습. 밥풀이 붙어있는 솥도 뒹굴고 있다고 당시 사진설명에 나와 있다.
1923년 9월 경성부가 세금을 내지 않은 집에서 가져온 솥과 그릇 등 갖가지 가재도구를 떨이로 처분하는 모습. 밥풀이 붙어있는 솥도 뒹굴고 있다고 당시 사진설명에 나와 있다.

당국자 : (계획을 제시한 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한가?』
대표자 :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서) 『우리에게 의견을 물어 어디에 쓰려고 하는가?』
당국자 : (거드름을 피우며) 『참고하기 위하여 묻는 것이다.』
대표자 : 『우리가 내놓은 의견은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나?』
당국자 : 『그것은 의문이다.』
대표자 : 『그럼 우리는 효과가 의문스러운 의견을 내기 위하여 막중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여기에 나왔고 우리 유권자는 이러한 「불확정」한 한바탕 토론회를 열기 위하여 할 일을 던져두고 시간을 쪼개 투표하느라 광분한 것인가?』
당국자 : 『그렇다.』
대표자 : (자리에 도로 앉아 속으로) 『이 무슨 쓸데없는 짓인가?』

동아일보 1922년 1월 12일자 1면 사설 ‘총독정치의 제도적 비판’ 중편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선거로 부협의회나 면협의회 대표를 뽑았지만 12개 부와 24개 지정면으로 제한했습니다. 모두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죠. 지정면 외에 2500여 개가 넘는 보통면에서는 임명제를 시행했습니다. 유권자는 같은 지역에서 1년 이상 살고 부세나 면 부과금을 5원 이상 낸 25세 이상 남자로 한정했죠. 지주나 부자 상인이 유권자도 되고 대표도 된 것입니다.

이 사설 하편에는 조선의 증세를 일본 의회가 결정하는 꼴을 한 집안의 일을 이웃집 할머니에게 물어 처리하는 것과 같다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외침은 18세기 미국에서 터져 나왔죠. 동아일보는 20세기 조선에서 국가는 인민을 위하고 세금이 인민을 위하는 것은 상식이며 따라서 정치는 민의에 따라야 한다고 외쳤지만 아무 메아리가 없었습니다. 지방자치제도의 발전 가능성에도 한 가닥 기대를 걸었지만 역시 기대에 그쳤을 뿐입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