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문화

‘환상적 사실주의’로 풀어낸 삶과 죽음의 장엄한 서사

장경렬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입력 2020-07-30 03:00업데이트 2020-07-30 03:0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제10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1> 나이지리아 작가 벤 오크리
나이지리아서 청소년기 보내며 특유의 문화 전통-정신세계 체험
식민지 이후 아프리카 문학 주도
나이지리아 시인이자 소설가인 벤 오크리는 ‘환상적 사실주의’에 기반한 수많은 문제작을 왕성하게 발표하고 있는 아프리카 대표 작가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한국 최초의 세계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이 올해 10회째를 맞는다. 박경리문학상은 보편적 인간애를 구현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문학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했다. 토지문화재단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 원주시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다. 상금 1억 원.

그동안 ‘광장’ 최인훈 작가(1회)를 비롯해 베른하르트 슐링크(독일·4회), 아모스 오즈(이스라엘·5회), 응구기 와 티옹오(케냐·6회), 이스마일 카다레(알바니아·9회) 등 저명 작가들이 수상했다. 앞서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22일 올해 최종 후보 5명을 선정했다. 첫 번째로 나이지리아 소설가 벤 오크리(61)의 작품 세계를 서울대 명예교수인 장경렬 심사위원이 소개한다. 수상자는 다음 달 중순 발표한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작가 벤 오크리는 식민지 시대 이후의 아프리카 문학을 주도하는 탁월한 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나이지리아가 독립하기 직전 해인 1959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을 영국 런던에서 보낸 뒤 1968년에 나이지리아로 돌아온다. 그리고 1978년에 다시 런던으로 떠나기 전까지 비아프라 내전 등 수많은 정치적 격동 속에 몸부림치던 신생국 나이지리아 특유의 사회 현실 및 문화 전통과 정신세계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청소년기를 보낸다.

이런 청소년기 체험은 21세 나이의 오크리에게 소설 ‘꽃들과 그림자들’(1980년)의 창작을 가능케 했고, 이로써 그는 문학계의 주목받는 작가로 성장한다. 하지만 그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은 32세에 발표한 ‘굶주린 길’(1991년)이다. ‘매혹의 노래’(1993년), ‘무한한 풍요’(1998년)와 함께 3부작을 이루는 이 소설이 펼쳐 보이는 것은 실로 장엄한 서사의 세계다.

이 장엄한 서사의 세계로 진입하는 데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아비쿠’라는 정령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이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나이지리아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중서부 해안 지역에서 널리 확인된다. 아비쿠란 어머니가 될 여성의 몸 안으로 들어간 뒤 아기로 태어났다가 무시로 죽어 자기네들 세계로 되돌아가는 일을 되풀이하는 정령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해당 지역 사람들의 믿음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의 때아닌 죽음은 이 사악한 정령들의 장난에 따른 것으로, 인간은 이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높은 영아 사망률로 인해 부모가 겪어야 할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사람들의 잠재의식이 낳은 것이 이 정령의 존재일 것이다.

‘굶주린 길’로 시작되는 오크리의 3부작에는 아비쿠인 ‘아자로’가 화자로 등장한다. 아자로는 동료 정령들의 재촉과 강요에도 그를 낳아 키우는 부모를 향한 사랑으로 인해 인간 세계에 남기로 작정한다. 초월적 존재이지만 인간 세계에 남기로 작정한 아자로가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는 인간의 삶과 현실 세계를 생생하게 서사화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3부작인 것이다.

“태초에 강이 있었다”는 말과 함께 ‘굶주린 길’의 제1부 제1권 제1장을 여는 “강은 길이 되었고 길은 가지를 쳐 온 세상으로 이어졌다”는 말 자체가 오크리의 문체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기라도 한 양, 그의 서사는 유장하게 이어진다. 또한 인간과 정령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세계―즉,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오크리의 탐구와 묘사는 지극히 시적이다.

여기서 감지되는 오크리의 문학적 시도는 이상향인 아카디아에 관한 영상물 제작을 위해 여정을 이어가는 일행의 이야기를 담은 ‘마법의 시대’(2014년)나 책이 사라진 디스토피아적 세계 속 인간의 삶을 그린 최근의 소설 ‘자유 예술가’(2019년)에서도 계속된다.

이 같은 그의 작품 세계는 일반화 또는 규범화에 저항한다. 하지만 작가가 문제 삼는 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정령이 살아 숨 쉬는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세계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 세계는 ‘환상적 사실주의’로 규정할 수도 있으리라. 어찌 보면, 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이 오크리의 작품 세계일 것이다.

●벤 오크리는…
1959년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국으로 돌아온 뒤 1980년 ‘꽃들과 그림자들’로 데뷔했다. 1986년 단편집 ‘성지에서의 사건들’로 코먼웰스 작가상, 1991년 ‘굶주린 길’(사진)로 영국 최고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혼령 아이 ‘아자로’를 내세워 나이지리아의 변화를 그린 작품으로 세계문학 필독서로 꼽힌다. 작품으로 ‘매혹의 노래’(1993년) ‘무한한 풍요’(1998년) ‘마법의 시대’(2014년) 등이 있다.
 
장경렬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문화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