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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유머-풍자-아이러니 녹여… 인간 삶의 비애 오롯이 그려내

이세기 소설가·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
입력 2020-08-06 03:00업데이트 2020-08-06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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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박경리문학상 최종 후보자들]<2> 한국 소설가 서정인
다른 문학지에 발표한 33편 묶은 ‘달궁’ 소설미학의 집대성 평가
파편화하는 소시민들의 삶 짚어
서정인(84)의 소설은 혼탁한 시대상이나 비극적 가족사 등 인간의 삶과 운명을 거창하게 내세우진 않는다. 그의 소설에서는 우리 사회의 시리고 아픈 모습이 작가의 날카로운 의식을 통해 절망과 허무, 독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페이소스로 그려진다. 어느 대목을 읽어도 곤혹스럽지 않은 것은 유머와 풍자, 아이러니가 깃든 어조로 담담하고 잔잔하게 작품 속에 녹아드는 유려한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달궁―박달막 이야기’는 “소설미학의 집대성”으로 평해진다. 이 소설은 1985년부터 5년간 각기 다른 문학지에 간헐적으로 발표한 33편의 단편 혹은 중편을 묶었다. 한 문학지에 연재된 것이 아니라 “여러 삽화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인과적인 줄거리가 없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빈틈없이 짜인 구성과 서사구조로 각 챕터가 긴밀한 유기성을 갖는 것이 강점이다. 1980년대 산업화 시대라는 거대한 파도를 배경으로 주인공의 행적을 일관되게 이끌 뿐만 아니라 파편화하는 소시민들의 삶의 비애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짚어 나간다.

큰 줄거리는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수많은 ‘여자의 일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야기의 올이 복잡하게 얽히고 화자의 시점이 바뀌긴 해도 그때마다 부딪치는 권태와 좌절을 만남과 이별의 구도로 설정하여 현대사회의 윤리관과 인간의 잃어버린 꿈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준다. 또한 진정한 가치가 오히려 인간관계를 어떻게 왜곡시키며, 삶을 짓밟는 폭력이 어떻게 약자에게 가해지는가를 촘촘히 제시하여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까 그의 소설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정해 놓은 스토리와 플롯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과정에 동참할 수 있게 한다.

하나의 주제를 다루기 위해 작가의 글쓰기 수법이 천편일률적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소설작법에 의존하기보다 작가 자신의 문학의식을 자유롭게 펼치는 것이 작가의 기량이다. 그의 소설이 특별한 것은 극적 반전으로 얼마든지 대중적 흥미와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소재임에도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면을 밝히고 인간 마음의 이면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서정인만의 소설’을 일궈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소설은 일인칭, 삼인칭으로 쓰이면서 간결체와 만연체, 대화와 독백, 사투리와 판소리 사설, 민중적 언어를 패러디하거나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사정을 기지에 찬 해학으로 전개하여 자기성찰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따라서 일반 서사기법에서 벗어난 생략과 암시,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일선상에 놓이는 존립 불가능한 시제에 이르기까지 묘사의 다양성과 행간마다 스며든 언어유희는 음악에서의 프레이징처럼 접착력 있게 독자의 가슴에 파고든다.

시대사적인 고뇌와 우여곡절을 겹겹이 다스린 드라마틱한 소설과는 다르지만 소설에서의 미학성을 살리기 위해 독특한 형식미와 비판적인 어법으로 문체 실험을 시도한 점, 그리고 한국 현대소설에서의 새로운 사실주의를 지향한 점 등 그가 이룬 문학적 공적과 작가정신을 볼 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서정인은 소설 형식의 미학적 탐구, 문체적 실험으로 한국 현대소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소설가 서정인은…
전남 순천 출신이다. 1962년 ‘후송’으로 등단한 이후 ‘가위’(1977년),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1980년), ‘달궁 둘’(1988년), ‘달궁 셋’(1990년), ‘붕어’(1994년), ‘용병대장’(2000년) 등을 발표했다. 작가는 격동의 현대사를 지내왔지만 이데올로기 대립 등을 직접적으로 내세우기보다는 날카로운 작가의식으로 사회 여러 모습을 해학과 아이러니로 형상화하면서 다양한 어법 및 서사 수법 등의 문체적 실험을 시도했다. 한국 현대소설의 새 형식을 끌어내는 데 전념하며 “형식의 파괴는 형식으로만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산문학상,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세기 소설가·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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