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우리는 지금 ‘가장 맛 없는 치즈’를 먹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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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책/폴 S 킨드스테드 지음·정향 옮김/324쪽·1만8000원·글항아리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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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인의 식탁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재료가 된 치즈의 기원은 어디에 있을까. 성경의 창세기에는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낳은 두 아들 중 아벨이 양을 치고, 가인이 농사를 지었다고 기술돼 있다. 농경이 1만1000년 전 서남아시아에서 발원했는데 이는 실제로 그들이 살던 시대와 지역과 거의 일치한다. 자연히 치즈의 역사도 농경의 시작점, 인류 역사의 발상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됐다.

인류 최초의 치즈부터 파헤쳐보자. 신석기시대인 기원전 6500년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발굴된 토기에 묻은 동물 젖 성분은 신석기인이 가축을 키우고 젖을 채취했음을 알려준다. 저자는 먹고 남은 젖이 따뜻한 곳에서 부드럽게 응고되는 현상을 통해서 치즈가 우연히 발견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보관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인위적으로 어떤 물질(레닛)을 넣으면 응고된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대 여러 문헌에는 치즈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집에 찾아온 여호와와 두 천사를 대접하며 치즈를 낸다. 치즈가 귀한 식재료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기원전 4000년경 계절과 수확, 다산의 여신인 이난나에게 치즈가 바쳐졌고 이것이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여신 숭배로 이어졌다.

우리가 즐겨먹는 치즈케이크 역시 로마시대 제우스 제단에 올리던 제물이었다. 물론 지배계급도 치즈를 즐겼다. 수메르 도시의 종교 노동자들은 간혹 치즈를 배급받았고 왕궁 식품 목록엔 치즈와 치즈가 들어간 과일 케이크가 포함돼 있었다.

신들이 사랑했던 치즈는 로마시대 들어 서구 여러 지역으로 폭발적인 확산기를 맞이했다. 로마군의 정복사업 와중에 치즈는 훌륭한 보급식량이 돼줬고 낙농민족 켈트족이 보유한 고산 치즈 기술은 로마제국 체제 아래 서양 전역으로 확산됐다. 중세의 유럽은 암흑기로 불리지만 수도원과 장원에서는 여러 가지 숙성 기술과 제조법을 실험해서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게 된 많은 종류의 치즈를 개발해 냈다. 브리, 로크포르, 생트모르 치즈 등을 비롯해 온도와 습도를 조율하거나 씻어내 곰팡이를 증식시키는 의도적인 썩히기로 색다른 풍미를 내는 치즈가 개발된 것도 이때다.

하지만 17∼19세기 이후 전통적인 치즈 생산 대신 균일한 품질의 공장형 대량 생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낙농부들은 치즈 장인(匠人)이란 지위를 잃었고 치열한 시장경쟁 과정에서 질 낮은 싸구려 치즈가 대중화했다. 공장이 미국의 치즈 생산을 지배했고, 새로 설립된 공장은 체더치즈 한 종류에 주력했다.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들고온 모차렐라 치즈는 피자 프랜차이즈를 비롯한 패스트푸드 산업 부흥을 타고 수요가 급증했다. 대중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수분 함량을 높이고 숙성기간을 줄인 맛없는 치즈에 익숙해져버렸다. 저자는 이 대목에 이르러 전통 치즈를 부활시키자고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인류 역사의 발상기서부터 지속가능한 농업과 동물 복지가 다시 화두가 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치즈를 소재로 서구 역사의 변천을 방대하게 훑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치즈 책#폴 s 킨드스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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