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미국의 파워’는 왜 예전 같지 않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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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올드리지 지음·김태훈 옮김/552쪽·2만3000원·세종서적

1987∼2006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정치 에디터와 함께 쓴 이 책은 미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위대한 기업가들에게 바치는 송가(頌歌)다.

만신전(萬神殿)에 모신 신들을 찬양할 때는 현재가 불만스럽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경제대통령으로 불린 그린스펀이 기업인들의 영웅담을 소환한 까닭도 장기 정체에 발목 잡혀 사회주의마저 거론되는 21세기 미국의 현실에 위기의식을 느껴서일 테다.

이 책은 미국의 최대 경쟁우위는 창조적 파괴를 이루는 능력에 있다고 강조한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설파한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낸 영웅들이 바로 모험적이며 혁신적이고 조직적인 기업가, 창업가라는 것이다.

건국 초기, 산업적 근대화를 추구하는 알렉산더 해밀턴 진영과 농업사회를 밀어붙인 토머스 제퍼슨 진영의 대결에서 해밀턴이 승리한 것은 자본주의의 승리였다고 책은 풀이한다.

미국의 성장동력으로 선택된 자본주의는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부터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인 1914년까지 고도로 발전했다. 1830년대 몇 년 차이로 태어난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 석유 부호 존 D 록펠러, 은행가 J P 모건 등이 창조적 파괴의 전성기를 이뤘다.

“이들은 진정한 거인들이었다. 과거의 왕이나 장군 말고는 누구보다 많은 권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알렉산더 대왕, 시저, 나폴레옹과 비교할 만한 소수의 사업가들이다.” 이 거인들은 “모든 평형 상태를 깨뜨리고 모든 조합을 해체하는 창조적 파괴의 힘”을 보였다.

그린스펀은 창조적 파괴의 영웅들이 ‘기업 왕국’을 건설하고 방어하기 위해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의 삶까지 희생시키는, 영혼의 제국주의라 부를 만한 죄를 범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결함 있는 영웅’을 대량생산했기 때문에 미국이 성공했다고 역설한다.

“파괴는 창조와 함께 변화를 구성한다. 불가피하게 기존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기존의 공장을 폐쇄시킨다. 중대한 혁신은 산업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

그는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산업계를 지배한 이들의 창조적 파괴는 역사상 최고로 생활수준이 향상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바가지 가격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저렴한 상품을 시장에 내놔 부를 쌓았다고 옹호한다.

이 책을 쓴 이유는 말미에 등장한다. 창조적 파괴의 역동성이 미국에서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동성이 쇠퇴하는 이유는 생산성을 억누르는 복지제도와 기업인의 혁신을 제한하는 규제의 증가에 있다고 그린스펀은 분석한다.

‘FANG’ ‘MAGA’ 같은 정보기술 거대 기업의 존재를 생각하면 그린스펀의 지적은 엄살 같기도 하다. 창조적 파괴에 대한 신봉도 만만찮은 반론을 부를 것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위기에 처한 세계경제에 모험적인 기업가정신이 필요치 않을 이유는 없다. 원제 ‘Capitalism In America: A History’.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올드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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