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0/중편소설 당선작 <줄거리>]신호와 소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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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찰과 역관찰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오프라인 대형 마트인 Y마트는 첨단 기술과 기기를 활용해 매출 부진을 타개하고자 한다. 이에 Y마트의 마케팅 기획자인 나는 CCTV로 고객들을 관찰한다. 십육 분할 대형 모니터 여섯 대가 설치된 Y마트의 지하 보안실. 나는 그곳에서 아흔여섯 개의 화면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취향과 기호를 순간순간 추적한다.

마트 곳곳에 설치된 광각 렌즈와 QHD급 고화질 카메라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꼼꼼히 포착해 화면에 띄운다. 최근에는 이미지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까지 동원해 고객들의 체류 시간은 물론 방문 카운팅 데이터까지도 간단히 출력해낸다.

물론 아직까지는 기계가 모든 것을 다 말해 주지 못해서 결국은 누군가가 나름의 관점을 갖고 신호와 소음을 분별해야 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의미 있는 신호이고 또 어떤 것이 노이즈인지는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 모호한 작업을 마케팅팀의 공계향 씨와 함께 하루 여덟 시간에 걸쳐 번갈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마케팅팀의 주된 관찰 대상은 혼자 쇼핑을 오는 사람들, 이른바 ‘혼쇼핑족’에 집중돼 있다. 1인 가구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 중 하나였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이들의 구매력만 해도 어느덧 120조 원 규모에 다가서고 있었다.

본격적인 마케팅을 위해 Y마트는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정량적 데이터를 모으는 한편, CCTV 관찰과 인터뷰 방문을 더해 정성적 데이터까지 보완할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에서 이름과 주소 등의 개인정보들을 제거한 뒤에는 구체적인 타깃 프로파일을 작성하는 것으로 일단의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말하자면 얼굴을 지워낸 데이터 위에 분석 결과로 유추해 낸 한 사람의 삶을 스케치해 봄으로써 타깃을 특정화하는 작업이 마지막 단계로 남아 있는 셈이다. 데이터로 시작해 데이터로 끝나는 이 장밋빛 계획에 조 이사는 누구보다 단단히 들떠 있다.

“대세는 데이터야. 요즘은 그게 원유이자 자본이지.”

조 이사는 데이터로 빚어낼 미래의 빵에 한껏 기대를 건다. 전 세계에서 하루 이십사 시간 동안 만들어지는 데이터의 양을 거론하며 Y마트 또한 그 디지털 빵 부스러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유령은 늘 소문과 풍문을 타고 다가온다. 빅데이터 혹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유령들. 이 유령들은 일종의 유행과도 같아서 해일처럼 몰려들어 눈과 귀를 잠식한다. 정말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원해야만 하는 것들을 부추기며 서로를 끝내 전염시킨다. 녹색성장이라든가 창조경제라는 이름표를 달고 나타났던 지난날의 그 유령들처럼 말이다. 트렌드와 이슈에 민감한 기업 마케팅이란 사실상 이 유령들과의 투쟁의 역사와 다를 바 없다.

어쨌든 이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Y마트는 시스템을 정비하고 면밀한 데이터 수집에 나선다. 각 분야의 특화된 장비들을 들이고, 포인트 적립 제도를 빌미 삼아 긴 약관을 고객들에게 들이민다. ‘개인정보 수집 이용 동의’와 ‘개인정보 제3자 제공 동의’ 항목도 그 안에 버젓이 넣어둔다. 그렇게 고객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풋내기 탐정처럼 그들의 디지털 발자국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이 대목에서 소설 ‘1984’의 빅브라더를 떠올리지는 않기를 바란다. 감시하고 군림하는 그에 비해 Y마트는 고작 관찰하고 편의를 제공할 뿐이다. 더구나 권력으로 치자면 그것을 손에 쥐고 흔드는 자는 공급하는 Y마트가 아니라 차라리 CCTV 저편의 수요자들이라 해야 옳다. 결핍을 느끼고 욕망하면서도 변덕스러운 선택과 모호한 반응으로 번번이 달아나버리는 소비자들. 무심한 소비와 은밀한 열망 사이에서 제각각으로 흩어져 움직이는 물음표 같은 존재들.

영미권에서는 달의 뒷면을 ‘달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mo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서 ‘어둡다’는 것은 빛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에 가깝다. 내게는 그저 소비자일 뿐인 사람들의 다른 한쪽에도 그 같은 달의 뒷면이 있다. 호기심. 충족되지 않은 욕망.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하는 마음. 혹은 무엇이 결핍되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방향 감각 없이 폭주하는 충동. 지구에서는 관측할 수 없는 달의 뒷면처럼 인간은 함께 공전하면서도 서로의 반대편에 대해 알지 못한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관찰 업무를 교대하기 위해 마케팅팀의 공계향 씨가 보안실로 들어선다. 공계향 씨의 손에는 오늘 K연구소에서 받아 온 보고서가 들려 있다. 지난주 조 이사의 지시에 따라 분석을 의뢰한 자료이다. 간단한 통계나 경향 분석 정도는 회사 내 인력으로도 소화할 수 있지만 조 이사는 심도 깊은 데이터 분석과 폭 넓은 시사점을 얻기 바랐다. 마침 데이터의 양만 충분하다면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K연구소가 나서자 조 이사는 주저 없이 그들에게 일을 맡긴 터였다.

곁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침묵했다. 인간의 행동에는 상수가 없으며 따라서 어떤 사회현상에 대한 예측이란 불가능하다고 했던 한 경제학파의 견해를 조 이사의 면전에서 줄줄이 읊어댈 수는 없었다. 조 이사의 얼굴에 모처럼 미소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기대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빅데이터의 분석 사례를 애써 상기하며 나는 Y마트 또한 유용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 왔다.

하지만 보고서를 펼쳐든 나는 곧 실망하고 만다.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 Y마트의 매출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와 같은 강력한 인과관계였으나 보고서에 드러난 디지털 빵 조각들은 어딘지 조금씩 이상한 모양으로 어긋나 있다. 만능열쇠처럼 여겨지던 새 시대의 유령 역시 결정적인 질문 앞에서는 느슨한 상관관계 이상으로 인간을 표현해내지 못했다.

하여 나는 새삼 절감한다. 숫자로 산출된 데이터만으로는 그 요령부득의 존재들에 가닿을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결코 그런 식으로 말끔하게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시그널로 치자면 인간은 소음이 많은 신호에 속했다. 누구도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뜻과 마음을 온전히 전송할 수 없다. 우리의 소통은 부분적으로 늘 어떤 그림자에 가로막히며 오해와 왜곡과 우연을 거쳐 가까스로 살아남은 간략한 진실만을 서로의 손에 쥐여줄 따름이다. 하물며 그와 같은 심연에서 과연 뭔가를 계량해 낼 수 있을지 나는 자신이 서지 않는다.

퇴근길, 나는 이른 귀가를 당부하는 아내의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금요일 밤마다 교회에 철야 예배를 가는 아내 대신 딸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것이 내게 맡겨진 임무이다. 그러면 아내는 그 사이 예배를 마치고 자정 무렵 운 것이 분명한 얼굴로 돌아오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아내를 지켜본다. 어떤 아픈 속내를 묻어두었기에 사람이 저렇게 온 마음을 다해 울 수 있는지 의아해하며, 어둠에 얼굴을 지운 채 캄캄한 예배당에 앉아 있어야만 진정이 되는 헝클어진 마음의 소음에 대해 추측해 보기도 한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은 아내가 나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인데, 그나마도 데시벨이 낮은 사인처럼 느껴져 곤혹스럽기만 하다. 모든 신호에 소음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아내의 눈물은 어떤 것이 신호이고 어떤 것이 소음인지 파악하기 힘들 만큼 노이즈가 많이 섞여 있다. 결국 나는 아내의 부은 눈에 담담해지기를 선택한다. 바람 소리나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같은 일종의 화이트노이즈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애써 마음을 추스른다.

나는 퇴근하기에 앞서 마트 매장으로 올라가 어린 딸이 오랫동안 졸라왔던 ‘겨울왕국’의 엘사 인형을 고른다. 그때 지하 보안실에 있는 공계향 씨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한다. 공계향 씨는 조금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CCTV로 매장 내 고객들을 관찰하다가 내 모습을 발견한 듯하다. 공계향 씨는 인형보다 엘사 드레스를 사다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친절하게 조언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정확히 몇 걸음을 옮겨야 엘사 드레스를 찾을 수 있는지까지 일러준다. 나는 마음을 써준 데 대해 고마워하면서도 사람들을 관찰하던 입장에서 이제 역으로 관찰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2. 인터뷰

나와 공계향 씨는 고객 표본 집단을 대상으로 가정 방문 인터뷰와 CCTV 관찰 녹화를 진행한다. 공식적으로 이 조사는 Y마트 고객들의 만족도에 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진짜 목적은 1인 가구를 방문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하는 데 있다.

공계향 씨가 설문지에 따라 질문을 하면 나는 답변 내용 중 기억해 둘 만한 것들을 노트에 적으며 틈틈이 그들의 집 내부를 관찰한다. 현관 입구에 놓인 접이식 산악자전거가 준전문가용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둔다든가, 노트북 옆에 꽂힌 USB가 마블의 인기 캐릭터 그루트임을 알아보는 식으로 그들의 취미와 레저 생활을 가늠한다. 물 한 잔을 부탁하면서 냉장고 사정을 슬쩍 훔쳐보기도 한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나는 조 이사의 전화를 받는다. 대화 끝에 얼마 전 K연구소로부터 받은 보고서가 수면 위로 오르고, 조 이사와 나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놓고 대립한다. 유의미한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결과 분석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K연구소의 주장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는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해석이며 Y마트의 고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나는 K연구소의 입장에 반박한다.

그러나 조 이사는 본래 계획대로 프로젝트를 밀어붙인다. 이에 나는 결국 조 이사와 자신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생각하는 인간의 모형을 빚어보다가 또 다른 시류의 유령에 휩쓸려 우왕좌왕하게 되리라고 예상한다. 빅데이터라는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몇몇 예외적 현상을 논외로 칠 것이며, 그런 식으로 원하지 않는 소음들을 신호에서 제거해가며 보고자 하는 것을 끝내 보고 말 것이라고. 왜냐하면 이 시대가 선택한 빅데이터가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다들 ‘빅(Big)’은 크고 압도적이며 따라서 매우 옳고 타당하다고 여기니까. 나는 조 이사의 지시에 따르면서도 이 거대한 것에 대한 흔들림 없는 숭배에 씁쓸함을 느낀다.

인터뷰를 끝낸 뒤, 나와 공계향 씨는 열흘간 녹화된 고객들의 영상 분석에 나선다. 그러다 이를 함께 지켜보던 조 이사의 입에서 ‘혼자 사는 여자 입장’에 관한 말이 나오자 나는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그때까지 조 이사는 내게 그저 상사이자 무성(無性) 인간에 가까웠다. 그녀는 내게 지시하는 기계, Y마트의 더 높은 윗선으로 의견을 이동시키는 알고리즘에 불과했다. 나는 그동안 조 이사를 대해왔던 스스로의 방식에 대해 되짚어보는 한편으로 어쩌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인간조차 제대로 이해하려 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느낀 것들을 나는 이야기 형식으로 고객 프로파일에 녹여낸다. 인간의 취약함을 어루만지며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이야기.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 꿋꿋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빤하고 지루한 하루의 나머지 반을 견디게 하는 이야기. Y마트가 타깃으로 삼은 1인 가구 소비자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그와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고 짐작한다. 모순되고 양면적인 행동을 보이며 시계추처럼 끊임없이 흔들리는, 우리가 잘 아는 어떤 특별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써내고자 한다.

3. 검증

오랜 기간에 걸친 마케팅 기획은 소소한 성과를 남기고 마무리된다. 그런 가운데 조 이사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든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이 그것이다. 이번에 출현한 유령은 과연 어디까지 Y마트와 같이 손을 잡고 가게 될지 아직 어떤 것도 장담할 수는 없다.

퇴근길, 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휴대폰의 음악 앱을 켠다. 이전에 들었던 음악들이 일렬로 정렬되어 손안에 들어온다. 이른바 자주 듣는 음악 데이터를 반영해 재생목록을 만들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다.

“우리는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음악과 영상을 감상하고 유용한 광고를 제공받습니다.”

나는 광고 박스 위쪽의 엑스 표시를 눌러 그것을 화면 저편으로 넘겨버리고 음악 앱을 끈다. 대신 오래전 휴대폰에 다운받아 두었던 음악 파일들을 찾아 재생시킨다. 꽃들이 시들까 봐 침묵으로 고통을 감추려 한다는 이브라힘 페레르의 노랫말을 새겨들으며 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서서 신호를 기다린다. 더러는 붉고 더러는 파란 제각각의 교통신호들이 어둠에 잠긴 도시 구석구석을 향해 어떤 메시지들을 쏘아올리고 있다.

▼타인의 희망을 기만하지 않는 글 쓰려 해▼

● 당선소감


이민희 씨
이민희 씨
보르헤스는 최종 원고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최종 원고란 단지 작가의 탈진으로 생기는 것이었지요. 서랍 속 원고들을 뒤적거리며 끝없이 고쳐 쓰던 시간들을 돌이켜봅니다. 당선 소식을 듣던 오후에는 저도 모르게 조금 울먹였던 것 같은데 이제 세상에 소설 한 편을 최종본으로 떠나보내자니 기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책이 좋아서, 책 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전공을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해 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흐려진 길을 다시 고쳐 가보기로 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만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일은 없겠지요. 어제 그랬고 오늘 그랬던 것처럼 다만 내일도 꾸준히 목격하고 관찰하는 체력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을 공정히 다루며 그들의 목소리에 울림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만한 행복이 없을 테지요.

새벽의 신앙을 물려주신 어머니, 아끼는 책에 그려 넣은 숱한 낙서들을 눈감아 주셨던 아버지, 오랜 시간 한결같은 믿음으로 지지해 준 여동생 현주와 현미에게도 애틋한 마음을 전합니다. 멀리 K국에서 선교 중인 남동생 성수와 그의 가족들, 그 밖에 미처 인지하지 못한 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견뎌 주었던 벗들에게도 안부를 전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걸음을 떼려 합니다. 쓰는 자로서의 태도를 일깨우던 선배 작가들과 글만큼 삶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치던 세상의 모든 건강한 생활인들에게 새삼 존경의 마음을 바칩니다. 수없이 드나들었던 서울시와 고양시의 도서관들도 저처럼 홀로 걷는 이에게는 든든한 스승이었습니다.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기에 앞서 부족한 글이 먼저 떠올라 부끄럽습니다. 타인의 희망을 기만하지 않는 글로 오늘의 이 깊은 감사함을 겸허히 갚아 나가겠습니다.

△1972년 강원 춘천 출생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 졸업

▼정확한 주제와 전문성 갖춘 디테일이 인상적▼

● 심사평


구효서 씨(왼쪽)와 은희경 씨.
구효서 씨(왼쪽)와 은희경 씨.
본심에 오른 응모작은 ‘몸의 일들’, ‘졸업유예’,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기생’, ‘영국정원’, ‘그늘의 가능성’, ‘사어’, ‘드라마터그’, ‘친구가 일베에요’, ‘밤에 지은 집’, ‘신호와 소음’까지 모두 11편이다. 읽은 소감을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들이었던 만큼 감사와 격려의 마음을 담아 호명하는 게 도리일 듯하다.

이 중 비교적 길게 논의했던 작품은 세 편이다. ‘밤에 지은 집’은 인물이나 사건이나 배경을 ‘소설적’이라는 말에 어울리도록 그려내는 솜씨가 발군이다. 더할 나위가 없는데 그 좋은 재주로 하필 40여 년 전의 그런 익숙한 인물, 사건, 배경을 다루어야 했는지 소설은 끝내 답하지 않는다.

‘친구가 일베에요’는 묘하다. 답답한데 시원하고 거칠면서 애처롭다. 웃기면서 슬픈 건 덤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이 양날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오늘날 청춘의 문제를 가로지른다. 그런데 처음부터 품은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무엇을 ‘일베’라고 상정한 것인지.

‘신호와 소음’은 무엇보다 정확하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에 필요한 소재는 어떠해야 하는지, 소재가 소재답기 위해서는 디테일이 얼마만큼의 분량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알고 그 계량과 적용에 성공했다. 그러한 정확한 계측과 문장으로 도달하는 지점이 아이러니하게도 ‘정확’에 대한 비판과 회의라니, 이 또한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위에 호명된 제목의 응모자 모두에게 마음 돋우어 기운 내기를 다시 한번 응원하며 당선자에게 축하의 말을 전한다.

구효서·은희경 소설가
#동아일보#신춘문예#2020#중편소설#신호와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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