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이웃, 오래가게… 박인당

  • 동아일보

“넓을 박(博), 박사(博士)에 쓰는 글자지요. 여기에 도장 인(印)자를 써서…. 뭐, 도장에 대해서는 좀 안다는 의미로 지은 거지요. 허허.”

도장 새기는 기술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한다는 석재 박호영 명장. 2004년 정부로부터 명장 칭호를 받았으니, 자타공인 최고인 셈입니다. 박 명장은 45년째 서울 종로구 관철동 인근에서 도장을 새기고 있습니다. 한때 오르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자리를 옮긴 적도 있지만 ‘박인당’이란 이름만큼은 지켜가고 있습니다. 이 이름의 가게를 낸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습니다. 칼을 처음 잡은 것으로 따져보면 60년이 더 됐습니다.

“내가 여든이 넘었는데, 도장 파는 일은 열일곱 살 때부터 했어요. 예전에 돈을 좀 벌었을 때는 인쇄소, 문구점으로 사업을 확장해본 적도 있었는데 잘 안 되더라고. 다 그만두고 그냥 도장만 파고 있어요.”

1·4후퇴 때 가족과 함께 고향 함경도를 떠나면서 시작한 타향살이. 이 일이면 밥은 굶지 않겠다 싶어 시작한 일입니다. 이렇게 외길. 도장 새기는 손기술이 탁월하다는 소문이 퍼져 전(前)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명사가 그의 고객이 됐습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는 상아(象牙)부터 수우각(水牛角·물소 뿔), 벽조목(霹棗木·벼락 맞은 대추나무) 같은 귀한 재료들이 그의 손에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인장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은행 예금통장에도 도장 대신 사인이 들어가는 시대지만 박인당만큼은 여전히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손으로 새긴 도장은 같은 글자라도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어요. 위조가 불가능하지요. 재산과 관계있는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하는 이유예요.”

간단히 설명하는 그의 표정에 연륜 못지않은 자부심이 배어 있습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오래가게#박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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