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애란 “원고를 통해 마주한 나의 시절들, 반가우면서도 쑥스러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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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17년 차에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 펴낸 소설가 김애란

김애란 작가의 산문에는 소설에서 그랬듯이 가족, 특히 부모님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상대를 어떤 시기에 어떤 상태에서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부모님의 몸(나이)에 이른 이후 갖게 되는 시선과 회한을 그렸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애란 작가의 산문에는 소설에서 그랬듯이 가족, 특히 부모님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상대를 어떤 시기에 어떤 상태에서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부모님의 몸(나이)에 이른 이후 갖게 되는 시선과 회한을 그렸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소설도 쉽지 않지만 산문은 더 어려웠다. 소설에선 내가 아닌 척 시치미를 뗄 수 있었다. 에세이는 숨을 곳이 없었다. 간간이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보고 들은 일화에 기대 글을 “쥐어짰다”. 이따금 자신을 무대에 올리더라도 직접화법은 피했다.

힘겹게 낳은 글을 그러모아 등단 17년 차에야 첫 산문집을 냈다. 제목은 ‘잊기 좋은 이름’(열림원·1만3500원·사진). 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애란 소설가(39)는 “원고를 통해 시절을 마주하니 반가우면서도 쑥스럽다. 너무 재치를 부린 부분이나 과잉된 부분들은 빼고 오리고…. 모든 글을 다시 썼다”고 했다.

“미숙한 표현이나 문장을 보면 부끄럽고, 과거의 감수성이 낯설게 다가오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했지만 향수나 아쉬움 없이 담담하게 원고를 마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시절에만 쓸 수 있는 글을, 한 시절들을 묶은 책이니까요.”

그의 관심은 나에서 우리로, 그리고 더 큰 우리로 외연을 넓혔다. 첫 단편집 ‘달려라 아비’(2005년)에서는 나의 기원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단편 ‘바깥은 여름’(2017년)에서는 울타리 안의 우리를 응시했다. 산문집에 실린 조각글 32편도 ‘1부 나, 2부 너, 3부 우리’로 나눠 담았다. 그는 “시간 순으로 글을 배열했더니 관심의 변천사가 한눈에 보였다. 생물학적, 사회적 요인으로 인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20대의 저는 지금보다 능청스럽고 명랑하고 사람을 좋아했죠. 다치고 실망하는 시행착오를 거친 지금은 타인에 대해 더 겸손해졌고요. 중요한 건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때로 잃어버린 것들이 아쉽지만, 과거와 지금의 내가 똑같은 일도 이상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세 권의 책을 내고서야 직업 소설가로서의 자의식을 갖게 됐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고 듣고, 스치는 단상 전부를 수첩에 기록하고. ‘글쓰기의 상태’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바지런히 움직이지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에는 기꺼이 스위치를 꺼둔다. 각별히 사랑하는 작가는 웹툰 작가인 윤태호와 도스토옙스키. 각각 “솜씨 좋게 삶의 세부를 그려내고”, “타고난 이야기꾼이어서”다.

그는 시대의 청춘을 다독이는 소설가로 불린다. 옹색한 삶에 서투르지만 당당하게 맞서는 청춘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내 왔다. ‘중견’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은 요즘. 그의 눈은 위와 아래를 바삐 오간다. 그는 “7년 전부터 1인칭에서 3인칭으로 감각이 변한 것 같다. 과거에는 사회에 막 발 디딘 이들의 깨끗함, 맑음, 낙관을 주시했다면 요즘엔 사회 구조 안에서 딜레마에 봉착한 이들에게 관심이 간다”고 했다.

“편의상 후배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동료인 작가들의 책을 자주 봅니다. 작가들의 첫 번째, 두 번째 책에는 그 시기에만 가능한 에너지가 담뿍 담겨 있지요. 김세희 작가가 그린 삶의 구체성, 박상영 작가의 에너지와 활달함, 김봉곤 작가의 섬세함과 에너지에서 기분 좋은 자극을 받습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김애란#잊기 좋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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