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명품 프로의 귀환… 에버그린 콘텐츠 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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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SNS 콘텐츠로 속속 재탄생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최불암이 옛 친구와 재회하는 장면. 제작진은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인 만큼 야외촬영 등 새 포맷으로 세련미를 더하려 했다”고 밝혔다. KBS 캡처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최불암이 옛 친구와 재회하는 장면. 제작진은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인 만큼 야외촬영 등 새 포맷으로 세련미를 더하려 했다”고 밝혔다. KBS 캡처
19일 방송된 KBS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탤런트 최불암 씨가 옛 친구를 찾아 나섰다. 고교 시절 친구를 만나 오랜 오해를 풀게 되는 사연을 담은 이 프로그램은 9.1%의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을 올리며 당일 교양 프로그램 1위를 기록했다.

오래전에 종영한 프로그램이 새롭게 생명력을 갖는 ‘에버그린(evergreen) 콘텐츠’가 최근 방송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첫 방송을 한 ‘TV는…’은 1990년대 40%대의 시청률을 구가했던 교양 프로그램을 ‘리부트’한 것이다. 익숙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사연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스튜디오 장면은 과감하게 들어내고, 주인공을 찾는 과정을 강조해 야외 촬영 비중을 높였다.

8년 만에 부활한 ‘TV는…’은 “종영한 작품 중에서 다시 보고 싶은 명작 프로그램이 많다”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따라 가을 개편을 통해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당시 KBS 내부에서는 ‘체험 삶의 현장’ 등 몇 개의 ‘고전’ 프로그램을 물망에 올렸고, 다른 ‘리부트’ 프로그램을 내는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버그린 콘텐츠의 확산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활발하다. 누리꾼들이 ‘추억의 명작’을 찾아내 공유하고 퍼뜨리며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하자 업계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처럼 과거 유행했던 시트콤은 짧은 에피소드 안에 완결성을 갖춰 유튜브에서 보기 좋다. SBS 캡처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처럼 과거 유행했던 시트콤은 짧은 에피소드 안에 완결성을 갖춰 유튜브에서 보기 좋다. SBS 캡처
“중고등학생 친구들이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웬그막(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나오는 노홍렬 아저씨라고 하면서요!”

코미디언 이홍렬 씨(64)는 최근 들어 자신을 알아보는 10대 학생들이 많아져 신기하다고 했다. 2000∼2002년 SBS 시트콤 ‘웬만해선…’에서 이 씨를 봤다며 반가워했다는 것. 태어나기도 전이거나 직후에 방영됐던 작품을 그들은 어떻게 접했을까. 바로 유튜브였다.

‘웬만해선…’은 처음엔 누리꾼들이 만든 ‘짤방’(간단한 사진이나 동영상) 형태로 SNS에서 소화되곤 했다. 인기가 점점 많아지자 SBS는 6월 하순부터 ‘레전드’로 꼽히는 에피소드들을 SNS 환경에 맞는 5분 내외의 영상으로 새로 편집해 올리기 시작했다. ‘웬만해선…’은 물론이고 앞서 인기를 끌었던 ‘순풍산부인과’(1998∼2000년)도 만날 수 있다. MBC도 비슷한 시기 같은 형식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을 선보였다. 요즘 세대의 입맛에 맞게 자막을 새로 단 것이 특징이다. KBS도 이달 유튜브 채널 ‘크큭티비’를 신설해 1983∼1992년 방송했던 ‘유머 일번지’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처럼 과거 유행했던 시트콤은 짧은 에피소드 안에 완결성을 갖춰 유튜브에서 보기 좋다. MBC 캡처
‘지붕 뚫고 하이킥’처럼 과거 유행했던 시트콤은 짧은 에피소드 안에 완결성을 갖춰 유튜브에서 보기 좋다. MBC 캡처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부터 SNS와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유물 발굴’ 문화가 시발점이었다. 이전에도 옛 TV 프로그램 ‘짤방’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누리꾼들이 지은 ‘유물 발굴’이란 이름이 퍼지며 더욱 확대됐다. 그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추억으로 화제가 됐고, 젊은 세대에게는 SNS 환경에 어울리는 새로운 자막과 속도감 있는 편집으로 어필했다. 방송사에서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유료로 다시보기를 제공하는 최신 프로그램이 아니기에 SNS에 올리는 데 부담이 없었다.

‘TV는…’의 최형준 PD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프로그램에 대한 향수와 인연을 맺었던 이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맞물리면서 시청자들이 좋은 반응을 보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레전드’ 대접받는 옛 프로그램은 그 자체의 완성도로 잠깐은 화제가 될 수 있지만 변화 없이 복고풍 감성에만 매달려서는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고 조언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tv는 사랑을 싣고#에버그린 콘텐츠#웬그막#지붕 뚫고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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