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나이 들면 죽어야지”… 할아버지는 왜 그럴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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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죽고 싶다고 하세요, 할아버지/하다 게이스케 지음·김진아 옮김/216쪽·1만2500원·문학사상

“저승에서 빨리 데리러 와야 하는디.”

87세의 외할아버지는 오늘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백수인 28세의 겐토는 할아버지의 말이 진심인지 의아하다. 홀로 돈을 버는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던지는 말에는 점점 날이 선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해도 온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할아버지를 보던 겐토는 문득 할아버지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가 진정 세상을 떠나길 원한다면 도와드려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간병일을 하는 친구에게서 과하게 간병을 하면 환자의 신체 기능이 쇠약해져 죽음에 이른다는 말을 들은 겐토는 할아버지를 밀착 간병하기 시작한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케이크와 차를 냉큼 갖다 드리고 빨래 개기, 청소도 대신 해드린다. 할아버지의 뇌세포를 둔하게 만들기 위해 겐토가 정성을 쏟는 모습은 한 편의 희극 같다.

한데 이런 겐토의 생각은 정면으로 펀치를 맞는다. 단기 요양시설에 간 할아버지가 젊은 여성 도우미의 부축을 받으며 여성의 몸을 더듬는 장면을 목격한 것. 욕조에서 목욕하다 균형을 잃고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할아버지를 일으켜 드리자 “죽을 뻔했어”라며 안도한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성욕을 느끼는 남자이며 생에 강렬하게 집착하고 있던 것이다!

고령의 가족과 함께 사는 이의 심리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안쓰럽다가도 짜증이 나고, 미안해지지만 다시 벌컥 화를 내게 되는 일상이 세밀화처럼 담겼다. 세대 갈등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가족의 입장에서, 또 사회의 일원으로서 고령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건조하면서도 직설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분명한 건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다는 사실이다. 원제는 ‘Scrap and Build’. 비능률적인 설비를 폐기하고 최신 시설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왜 자꾸 죽고 싶다고 하세요#할아버지#하다 게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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