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SHIT 욕설, 악담, 상소리가 만들어낸 세계/멀리사 모어 지음·서정아 옮김/476쪽·2만2000원·글항아리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뇌중풍으로 쓰러져 말하는 능력을 잃었을 때, 한 단어만은 잊지 않았다. 바로 “제기랄(cr´enom)!”. 수녀들은 그가 욕설을 너무 자주 하자 악마의 농간에 씌었다고 생각해 병원에서 쫓아냈다. 그런데 보들레르가 한 욕은 사실 ‘하느님의 신성한 이름(Sacr´e nom de Dieu)’을 줄인 말이다. 이렇게 욕설은 성스럽거나 상스러운 것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금기에서 시작했다.
책은 고대 로마와 중세 르네상스, 20세기 이후까지 욕설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다룬다. 다만 저자가 스탠퍼드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영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기에 분석 대상은 영어권에 한정되어 있다.
21세기에 들어 외설스러운 것에 익숙해져 사람들은 성적인 욕설을 그다지 불쾌해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흑인 등 유색인종과 타 민족을 멸시하는 속어가 차지했다. ‘젠장’, ‘빌어먹을’보다 ‘깜둥이(nigger)’라는 욕설이 심리적으로 더 큰 타격과 저항감을 불러일으킨다.
극단적 감정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할 수 있는 비속어가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게 하는 특별한 창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상소리의 역사를 따라가면 수 세기에 걸쳐 사람들의 정서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이야깃거리를 쉽고 재밌게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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