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류의 오랜 꿈 ‘수명 연장’의 비밀을 밝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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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비밀/엘리자베스 블랙번/엘리사 에펠 지음/이한음 옮김/460쪽·1만7000원/알에이치코리아

영화 ‘집으로’의 한 장면에서처럼, 누구나 한때는 어린아이였고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노화는 필연적이지만 이 과정을 더디고 우아하게 만들어줄 비밀은 존재한다. 이 책은 ‘텔로미어’란 생물학적 근거를 통해 그 비밀을 조목조목 밝혀낸다. 동아일보DB
영화 ‘집으로’의 한 장면에서처럼, 누구나 한때는 어린아이였고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노화는 필연적이지만 이 과정을 더디고 우아하게 만들어줄 비밀은 존재한다. 이 책은 ‘텔로미어’란 생물학적 근거를 통해 그 비밀을 조목조목 밝혀낸다. 동아일보DB
고등학교 졸업 10주년 모임에 참석했다고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더 비싼 옷을 입었고, 더 좋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신체적으로는 모두 공평하다. 동창생 모두는 눈부신 젊음의 전성기에 와 있다. 하지만 동창회가 20주년, 30주년에 이르면 갈수록 변화가 뚜렷해진다. 누구는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고 갖은 병에 시달리지만 누군가는 서서히 우아하게 나이 들어간다.

노화는 필연적이지만 노화의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엘리자베스 블랙번 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는 노화의 열쇠를 ‘텔로미어’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텔로미어는 우리 세포 속 염색체의 양 끝단에 있는 구조를 뜻한다. 쉽게 말하면 신발 끈 끝에 보호용으로 붙는 플라스틱이나 쇠붙이(애글릿·aglet)이라고 떠올리면 된다. 신발 끈 끝이 너무 닳으면 그 끈은 쓸 수 없게 된다. 세포도 그렇다.

염색체 손상을 막아주는 덮개 역할을 하는 텔로미어가 마모돼 짧아지면 세포는 지친 상태로 헤이플릭 한계(세포분열을 할 수 없는 자연적 한계)에 이른다. 아직 살아있지만 분열을 영구히 멈춘 이 세포가 많아질수록 노화가 진전된다. 실제로 텔로미어의 길이는 수명과도 연관이 있었다. 텔로미어가 긴 사람들의 암·심장병 사망을 포함한 총사망률이 가장 낮았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걸 막아야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블랙번은 여기서 한 가지 더 놀라운 발견을 한다. 짧아진 텔로미어가 도로 길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텔로미어를 만들고 보충하는 효소 ‘텔로머라아제’ 덕분이다. 텔로머라아제는 닳아 사라진 염색체 끝에 새로운 끝을 만들어 달아 세포분열이 계속 이뤄지게끔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텔로미어를 회복할 수 있을까.

건강 및 수명 연장과 직결되는 이 비밀을 블랙번은 광범위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밝혀낸다. 우선 텔로미어는 스트레스에 영향을 받는다. 일상의 사소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오랜 간병생활처럼 지속적이며 위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는 텔로미어를 현격히 짧아지게 한다. 스트레스 가운데 가장 좋지 않은 유형은 ‘위협반응’과 연관이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두려움, 불안 등 전면적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혈관이 수축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혈압이 오른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달아나거나 싸우기도 불가능해진다. 이럴 땐 “내 몸이 과제에 집중하게끔 나를 돕는 신호니 한번 도전해보자”고 스트레스를 재해석하는 것이 좋다. ‘위협반응’을 ‘도전반응’으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텔로미어를 보호할 수 있다.

사고방식뿐 아니라 음식, 운동, 수면 습관과도 텔로미어는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텔로미어에는 유산소 운동이 가장 효과적이다. 일주일에 세 번, 45분씩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영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수면시간을 매일 7시간 이상 확보하는 것이 긴 텔로미어를 유지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도 나타났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 책은 건강한 노후를 만드는 생활습관을 ‘텔로미어’라는 생물학적 비밀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도출해냈다. 건강한 음식과 충분한 수면, 긍정적 사고방식. 어쩌면 이 뻔한 정답들이 텔로미어를 이해하고 나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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