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된 가장 큰 기쁨은 인생을 나 주도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4일 15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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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번스타인의 생일과 은희경 소설가의 신춘문예 축사

“삶의 가장 큰 목적은 ‘나눔’에 있어요. 연주자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죠.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나누어 주기 위해선 먼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어떻게 본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거울을 들여다보고 외쳐요. ‘잘생겼다!’(웃음) 그리곤 피아노 앞에 앉아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내가 피아노로부터 무엇을 끌어낼 수 있을까, 또 이것들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항상 질문하는 거죠. 피아노를 치는 이유가 곧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음악과 삶을 떼어놓지 마세요. 먼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더 나은 음악가가 될 수 있고, 비로소 남에게 아름다움을 나눠줄 수 있으니까요.”

오늘, 4월 24일은 미국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시모어(세이모어) 번스타인이 90세를 맞는 생일입니다. 1927년 태어났지요. 위의 말은 번스타인이 지난해 방한 당시 마스터 클래스(저명 음악가가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한 것으로 ‘월간 객석’이 보도한 것입니다. 번스타인은 최근 영화배우 에단 호크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번스타인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꼭 66년 전인 1951년 4월 24일, 그러니까 자신의 24세 생일에 인천에 도착합니다. 왜냐고요? 6·25전쟁에서 싸웠거든요.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케네스 고든과 함께 100회가 넘는 클래식 공연으로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병들을 위로했습니다. 지난해 6월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다시 방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홍보영상을 볼까요?





번스타인과 한국의 인연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1960년 4.19 혁명 당시에도 한국에 있었습니다. 지난해 6월 14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인터뷰를 볼까요?

“저 스스로 ‘나와 한국의 인연은 정말 특별하다’고 느낍니다. 1960년 방한했을 때 4·19혁명이 터져 모든 공연이 취소됐어요. 저와 같이 공연하기로 했던 월터 매카너기 당시 주한 미국대사(클라리넷 담당)에게 ‘나를 데모하다가 부상당한 학생들이 있는 병실로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고 병원에서 그들을위해 연주했습니다. 우리(미국 시민)는 민주주의를 위해 항거하는 당신(학생)들의 편임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거든요.”

기자는 사실 클래식 음악에는 문외한입니다. 번스타인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지난 1월 18일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신춘문예 시상식에서였습니다. 은희경 소설가가 번스타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의 한 부분을 인용해서 당선자들을 위한 격려사를 해 주셨거든요. 사실 은희경 소설가는 격려사를 맡는 것을 거의 마지막까지 고사하셨는데, 기자가 청탁을 되풀이하자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헌데 일단 맡으시니, 구구절절 가슴을 울리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미세먼지도 어느 정도 가시고 모처럼 봄 같은 봄날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일 신춘문예 시상식 행사장에서 은희경 소설가의 격려사를 노트북으로 받아 적은 것은 기자밖에 없었기에 늦었지만 ‘은희경 소설가의 생애 첫 신문춘예 격려사’를 올려봅니다. 도전과 새로운 일의 시작을 꿈꾸고 있는 이들이 각오를 다지게 해 줄 겁니다. 봄은 해마다 새 봄이네요.

◇은희경 소설가의 격려사

―2017년 1월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안녕하세요. 1995년 신춘문예 당선자 은희경입니다. 정말 22년이나 지났네요. 지금 옆에 계신 오정희 선생님과 잠깐 말씀 나눴는데, 선생님은 신춘문예 당선 시기의 기억이 별로 없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선생님은 대학교 2학년 때 20대 초반에 그 때부터 문재를 빛내시고 일찍부터 시작하셨기 때문에 그러셨으려나요’하고 말씀드렸어요.

저는 35살에 작가가 돼서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서대문에 있는 (동아일보) 사옥에서 (시상)식이 있었고요, 소프라노가 와서 ‘꽃구름 속에’라는 노래를 불러주고…. 아까 수상자들 소감에도 있었지만, 정말 글로만 뵙던 선생님들이 제 시상에 박수를 쳐 주시고, 너무나 꿈만 같은 순간이었어요. 근데 가끔 그 때를 떠올리면 그 노래가 ‘꽃구름 속에’여야 했을까, ‘웰컴 투 정글’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물론 지금 받는 축하만큼이나 여러분이 앞으로 시작해야 할 시간 속에 너무나 많은 고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잘 썼는데, 왜 사람들이 못 알아보지 하는 고민도 있고, 이렇게 재미있고 중요한 글을 독자들은 왜 읽지 않는 거지 하는 고민도 있고, 평론가들은 또 내가 호랑이를 그렸는데 사자를 잘 그렸다거나 혹은 기린을 그리다 실패했다거나 이런 말을 하지, 이런 고민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나에게 재능이 있는 것일까, 작가로서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많은 순간 그런 고민에 시달려 왔고요. 작가가 된지 22년이 됐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두렵지요.

예전에 박완서 선생님 인터뷰를 보니까, 선생님도 그러셨다고 해요.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처음 하는 일이고, 그렇게 때문에 굉장히 두렵지만 그래서, 그래서… 계속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것이 문학의 매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제가 최근에 새해 결심으로 ‘지금까지 내가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안 읽은 책들을 좀 읽자’ 이런 결심을 해서 첫 번째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마감을 앞두고 있는데, 역시 두려운 마음에 서사 연구를 새로 하겠다는 핑계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지금 모두가 이미 다 밝혀진 이야기를, 1800년대 쓰인 소설이니까 좀 너무 낡은 얘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중간 지나면서 굉장히 빨려 들어서 읽게 됐어요. 특히 안나가 특히 브론스키를 만나고 와서 기차에서 마중 나온 남편을 보는 순간에, 다른 남자를 알게 된 뒤에 자기 남편을 보니까 ‘저 사람이 저렇게 귀가 못생겼나’ 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 시대가 어떻든 간에, 1800년대 쓰인 소설이지만, 귀족으로 살아온 아저씨지만 톨스토이라는 사람이 작가일 때는 좀 다른 모습으로 인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제가 축사를 끝까지 사양했는데 그래도 한번 시키면 열심히 해서, 저도 그 중에서 몇 구절을 찍어왔습니다. 짧은 글이니까 읽어드릴게요. 이것은 여러분, 새로 작가로서 출발하는 분들을 톨스토이가 딱 통찰한 그런 글 같아요. 결혼을 곁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결혼한 사람의 그런 심정인데, 그냥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다가 실제로 작가가 된 여러분의 마음하고 공감이 될 것 같아서 짧은 글이니까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이 생활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매순간 그는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끄러져가는 작은 배의 매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사람이, 자기가 그 작은 배에 탔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가만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어느 쪽을 향해서 갈 것인지를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발밑에는 물이 있고, 그 위를 노 저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것이 몹시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만 있을 때에는 손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까 썩 즐겁기는 해도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게 여러분 심정하고 같은가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면허증을 갖게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작가가 돼서 가장 좋은 게 이렇게 아름다운 배의 흐름을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배를 몰아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내 인생을 뭔가 나 주도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제가 작가가 된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최근에 영화에서 한 장면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는데, 세이모어(시모어)라는 피아니스트의 전기 영화였는데요. 거기서 ‘예술이란 재능으로 되는 게 아니라 자기 노력으로 되는 것’이라는 말은, 너무 단순한 것 같지만 20년도 더 된 소설가에게, 그리고 신춘문예 당선된 지 20년 된 소설가에게 그것은 너무나 항상 새로운 깨달음입니다. 방법이 있다는 게 다행이지 않은가요? 거기서는 피아니스트들에게 죽어라고 연습하라고 말하는데 작가에게 피아니스트의 훈련과 연습은 무조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쓸 때 행복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화의 끝 장면에서 그런 게 나와요. ‘음악을 통해서, 예술을 통해서 내 손이 하늘을 만질 수 있다니’ 하고 환희에 젖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표정을 자주 짓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진짜 축하드립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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