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대전 대흥동 뾰족집의 슬픔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입력 2017-03-16 03:00수정 2017-03-16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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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건축됐으나 재개발 과정에서 2014년 근처 다른 곳으로 옮겨진 대전 중구 대흥동 뾰족집.
“따스한 햇살이 들면, 금방이라도 담장 너머로 소녀의 피아노 소리가 들릴 것 같아요.” “동화 속이라고 할까, 내 마음의 집 같은 곳….” 1929년 건축된 2층짜리 목조건물, 대전 중구 대흥동 뾰족집. 사람들은 오랜 세월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추억을 만들었다.

대흥동 뾰족집은 대전지역 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건축 당시 대전 철도국장의 관사였다고 한다. 이 집은 외관과 내부 구조가 독특하다. 맞배지붕의 본체 건물에 거실이 원형으로 돌출되어 있다. 원형 공간의 원뿔형 지붕은 맞배지붕과 함께 뾰족하게 솟아올라 뾰족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내부는 일본식, 서양식 절충이다. 1929년 당시로서는 과감하고 세련된 주택 디자인이었다. 여기에 호젓한 마당까지 어울려 ‘동화 속의 집’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뾰족집은 원래 대흥동 429-4번지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주소는 37-5번지다. 원래 위치를 잃고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러하다. 2000년대 중반, 429-4번지 주변의 재개발이 추진되었다.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서 뾰족집은 헐릴 위기에 처했다.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보존과 철거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2008년 다행스럽게 뾰족집을 다른 곳으로 옮겨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런데 2010년 10월 재개발조합이 절차를 무시하고 벽체와 창호를 철거한 채 목조 뼈대만 남겨 놓았다. 재개발조합 소유라고 해도, 이전이 계획되어 있었으니 하나하나 해체했어야 하는데 그냥 부숴버린 것이다. ‘대전시 문화재이니 훼손해선 안 된다’는 경고문이 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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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뾰족집은 2014년 수백 m 떨어진 37-5번지로 이전 복원했다.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았지만 지금 상황은 열악하기만 하다. 주변은 온통 모텔과 원룸 건물들. 마당도 없어 예전 뾰족집의 낭만과 여유는 사라졌다. 답답하고 삭막할 뿐이다. 게다가 입구는 굳게 잠겨 있고 유리창 몇 개는 떨어졌다. 내부 마무리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 재개발조합 관리사무소로 사용될 것이란 얘기도 있지만, 지금 뾰족집은 쓸쓸하기만 하다. 지나간 일이지만, 애초에 이전 부지를 잘못 고른 것이다. 진정성이 결여된 이전 복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참 아름다웠던 추억의 공간, 대흥동 뾰족집.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 예쁜 추억 하나를 잃어버렸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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