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 미국이 낳은 열병의 정체/모리모토 안리 지음/강혜정 옮김/316쪽·1만5000원·세종서적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1992년)의 한 장면. 저자는 이 영화에 대해 “낚시하는 인물이 자연 속에 오로지 홀로 존재하는 상황, 기독교 예배 참여자가 홀로 앉아 신과 마주하는 정신적 공간을 동일시해 포착했다”고 썼다. 사진 출처 veteranstoday.com
일본인 기독교 신학자가 쓴, 미국 기독교와 정치사에 대한 책이다. 서문에서 그는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라는 말이 미국 역사가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1963년 펴낸 책에 처음 쓰였다고 밝혔다.
“미국은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다수의 명문대를 보유한 첨단 과학기술 국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특이할 정도로 기독교가 번창해 ‘바다가 갈라져 길이 만들어졌다’든가 ‘죽은 사람이 부활했다’든가 하는 얘기를 더없이 진지하게 나누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나라다. 진화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논의가 사회 고위층 입에서 태연히 나오는 곳은 미국뿐이다. 과연 미국은 지성적인 나라일까, 반지성적인 나라일까?”
저자는 유럽을 떠난 청교도들을 통해 미국에 건너온 기독교를 ‘계약신학’이라 지칭한다. 반복되는 인간의 죄와 반역에도 불구하고 신이 무조건적 은총을 베푼다는 성서의 기본 메시지와 달리, 신과 인간 쌍방이 서로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는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의 호혜 관계로 미국식 기독교가 정립됐다는 설명이다.
“인간이 복종하면 신이 은총을 베풀고 인간이 배반하면 신이 멸망을 내린다.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깔끔한 논리 같지만 경박하고 저속하다. 이건 아주 초보적이고 현세적인 기복(祈福)신앙으로 상당히 특이하게 기독교를 이해한 사례다. 미국이 기독교의 본고장이라 생각한다면 생각을 바꾸길 권한다.”
‘진화론을 부정하는 논의가 태연히 나오는 곳이 미국뿐’이라는 지은이의 주장에 대해서는 ‘바로 이웃한 나라에 대한 신문 기사를 잠깐 챙겨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진다. 현재 손에 쥐고 있는 행복의 안정성을 확인하고 싶은 까닭에 그 행복의 정당한 근거와 권리를 우연이 아닌 ‘신의 뜻’으로 확정짓는 심리에 대한 기술 위로, 현재 한국 사회의 여러 상황이 하나하나 겹쳐 얹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의 대통령으로 똑똑한 엘리트는 환영받지 못한다. 조지 W 부시가 두 차례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지적 능력이 두드러지는 상대 후보에 비해서 그는 ‘맥주를 함께 마시며 소탈하게 대화할 수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본문은 서문만큼 명료하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삽입한 듯한 몇몇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해석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서구의 종교를 깊이 공부한 아시아인의 관점을 빌려 미국 정치사를 개괄한다는 취지로 읽기에도 신뢰도가 떨어진다. 반지성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태도로 책을 열어 딱딱한 역사 수업처럼 미국 기독교의 성장기를 늘어놓더니, 후반부로 가서는 반지성주의의 효용을 애매한 어조로 나열하다가 “권력과 지성의 유착에 금을 낼 우수한 반지성주의 지성의 출현을 기대한다”고 맺는다. 상황과 필요에 따라 손쉽게 인용할 무색무취 문장을 생산하는 현대사회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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