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연예인의 주부 생활을 그린 KBS 예능 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 ‘아내가뭄’의 저자는 남성들의 서툰 살림 솜씨는 유머의 소재가 되지만 여성이 부엌일을 못하면 싸늘한 눈으로 바라본다고 지적한다. 동아일보DB
“진이 다 빠져서 퇴근하면 아이도, 남편도 온통 해 달라는 것 투성이야. 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맞벌이를 하는 친구가 호소했다. 친구도 자신을 챙겨줄 존재가 절실히 필요하단다. 바로 아내다. 호주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고위직에 오르는 여성이 여전히 부족한 건 가사노동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주당 70시간을 일해야 성공할 수 있는 직업군에서 남성들은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는 아내가 있기에 업무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벌이를 해도 집안일 대부분을 떠안아야 하는 여성이 승진할 확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4년 여성은 하루 평균 4시간 33분 가사노동을 하는 데 비해 남성은 2시간 21분으로 절반에 그친다. 한국은 격차가 더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이 집안일을 한 시간은 3시간 14분이었지만 남성은 5분의 1인 40분에 불과했다.
저자는 여성의 승진을 제한하는 유리천장이 아니라 남성이 일터에서 집으로 향하는 것을 가로막는 ‘유리 비상계단’에 대해 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이를 어렵게 하는 사회구조를 촘촘히 짚어내고 자신의 경험과 각종 사례를 발랄한 문체로 맛깔스럽게 버무려내 설득력을 높인 것이 이 책의 강점이다.
세 자녀의 엄마인 저자는 캥거루 봉제인형과 함께한 활동을 사진 찍어 스크랩하는 아이의 과제를 깜빡 잊고 챙기지 못했을 때 ‘인간으로서 실패한 것 같았다’고 토로한다. 커피숍에 가려 해도 분유, 기저귀, 손수건 등 온갖 물건을 ‘우주탐사’하듯 챙겨야 하고, 집에서 일하더라도 집요하게 저자의 콧구멍에 시리얼을 집어넣는 아이를 상대해야 한다.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는 오전 7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도 오전 1시까지 식사를 미리 준비해 놓고 가야 뭔가 속죄하는 기분이 든단다.
남성이 집안일을 하려면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거나 원하는 시간에 근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근무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기보다는 현재 있는 직원에게 더 많은 업무를 안긴다. 노동운동 역시 정규직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꼬집는다.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원하는 시간에 일하는 탄력 근무를 지원하는 남성은 승진할 생각이 없는 인물로 간주된다.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오기 위해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하는 남성은 퇴근할 때마다 동료에게서 “일찍 가서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전업주부 남성을 바라보는 시선도 따갑다. 사람들은 “취직이 안 돼요?”, “언제 복직해요?”라고 묻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여기며 어색해한다. 한 전업주부 남성은 아이의 담임교사로부터 “학부모 모임에서 다른 엄마들이 굉장히 불편해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남성 스스로도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여성 변호사의 전업주부 남편은 이따금 발을 동동 구르며 “나는 부엌데기 남편은 되지 않을 거야”라고 절규한단다.
하지만 아빠에게도 아이가 태어나서 걷기 시작하고 말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권리가 있다는 대목은 가슴을 울린다. 최고경영자부터 육아휴직을 사용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실현될 날이 올지는 미지수지만 행복한 삶을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아내가 되어주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다. 원제는 ‘The Wife Dr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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