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지치지 않고 현실을 바꾸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26>린다 론스탯의 ‘Blue Bayou’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요즘 피곤하시죠? 저는 요즘 몹시 피곤합니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울 때엔 전 국민이 피곤해지고, 그 피곤은 대체로 서비스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퍼부어집니다. 만만한 대상이니까요. 특히 ‘스트레스의 쓰레기통’인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는 저 같은 사람들은 더 피곤합니다.

 분노는 표출의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 대상이 없으면 정말 미쳐버리죠. 저와 저의 동료들은 아주 좋은 표적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간호사는 “너는 내 돈을 부당하게 빼앗아간다. 도움이 안 된다. 사기를 친다!”라고 분노하기에 딱 적당한 대상이죠.

 이럴 땐 휴식이 필요합니다. 어디를 봐도 부정적인 자극뿐일 때에는 도피가 필요하죠. 더 바랄 수 있다면 그 충만한 부정적 감정을 상쇄해줄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이 필요합니다.

 제가 그동안 노래 이야기는 너무 안하고, 딱딱한 이야기만 했죠?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시점에서의 가장 큰 도움은 잠시 동안의 자기 보호라고 판단됩니다.

 최근 대부분의 미국인도 정말 짜증나고 황당한 대선을 겪으며 극심한 피로와 분노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현대 정신의학을 이끌어가고 있는 석학들에게 자문했죠.

 이 석학들이 내놓은 조언은 TV를 끄고,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이야기와 활동을 하라는, 정말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이었죠. 그런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정치적인 인간들이 들으면 몹시 분노할 이야기죠. 현실 외면이라고 말이죠. 그래도 보통 사람들은, 분노도 좀 쉬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음악 하나 밥상에 올려드립니다. 휴식은 두 귀만으로도 가능하니까요. 저는 린다 론스탯 누나의 사진을 중1 때 사촌형 집에서 처음 봤습니다. ‘최신 히트팝송’이란 노래책이었는데, 영어 가사를 한글로 ‘로울링, 롤링, 롤링 라이크 더 리버∼!’라고 써 놓은 책이었죠.

 그 사진에서 린다 누나는 단발머리로 이마를 가리고 그 큰 눈으로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당장 보호본능을 느꼈죠. 나중에 가서야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여자의 해악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늦었죠. 남자애가 그런 슈퍼 히어로가 되는 환상만 품지 않을 수 있다면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블루 바유’는 로이 오비슨의 노래인데, 푸른 포구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고향을 떠나 고생만 하는 외로운 처지지만, 언젠가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고향 포구로 돌아가서 낮잠을 실컷 자고, 친구들과 낚시를 하면서 느긋한 삶을 살겠다는 노래죠.

 이 노래의 베이스를 잘 들어보세요. 느긋한 파도가 저 멀리서 “쑤와아∼!” 하며 천천히 밀려오는 리듬입니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흔들며 잠재워줄 때의 리듬이죠.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가끔은 이런 세상모르고 살아가게 해주는 노래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지치지 않을 수 있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에 근거한 언행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린다 론스탯#로이 오비슨#blue bayou#분노#스트레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