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만 노린 해외 작가전, 이미지 마케팅 그칠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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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미술관의 닉 나이트展 & 현대카드 스토리지의 슈리글리展

《기업체가 운영하는 서울의 전시 공간 두 곳에서 영국 출신 두 작가의 개인전이 지난주 나란히 개막했다. 종로구 대림미술관은 내년 3월 26일까지 사진작가 닉 나이트(58)의 ‘거침없이, 아름답게’를, 용산구 현대카드 스토리지는 내년 1월 8일까지 팝 아티스트 데이비드 슈리글리(48)의 ‘Lose your Mind’전을 연다.》

 
닉 나이트의 2008년작 ‘핑크 파우더’.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의상을 입은 유명 모델 릴리 도널드슨의 모습을 몽환적 이미지로 가공했다. 대림미술관 제공
닉 나이트의 2008년작 ‘핑크 파우더’.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의상을 입은 유명 모델 릴리 도널드슨의 모습을 몽환적 이미지로 가공했다. 대림미술관 제공
 나이트는 질 샌더, 톰 포드 등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실험적 이미지를 선보이며 명성을 쌓은 인물이다. 이번 전시에는 1980년대 초 스킨헤드 청년들과 교류하며 촬영한 사진, 한발 앞서 디지털 효과를 도입한 1990년대 패션 사진과 최근작 등 작품 110여 점을 공개했다.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곤충들’(2007년). 철골, 철사, 철판으로 만들어 까맣게 칠한 거미, 개미, 사마귀 모양의 조각을 늘어놓았다. 현대카드 스토리지 제공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곤충들’(2007년). 철골, 철사, 철판으로 만들어 까맣게 칠한 거미, 개미, 사마귀 모양의 조각을 늘어놓았다. 현대카드 스토리지 제공
 슈리글리는 지난달 29일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새로 설치한 7m 높이 청동상 ‘Really Good’으로 이목을 끌었다. 과장된 비율로 늘린 엄지를 치켜든 오른손을 표현한 이 새까만 조각상에 대해 일간지 가디언은 “브렉시트를 비아냥거리는 불쾌하고 유감스러운 흉물”이라고 지적했다. 논란을 낳았지만 1년 6개월 동안 광장 한구석을 차지할 그의 작품은 슈리글리가 적어도 현재 영국 안에서는 누구보다 주목받는 아티스트 중 한 사람임을 확인시킨다.

 슈리글리의 냉소적 성향은 설치, 조각, 애니메이션 등 작품 20여 점을 내놓은 이번 서울 전시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다. 6일 열린 개막 언론간담회에서 그는 단박에 대변 더미를 연상시키는 굵고 긴 점토 설치물을 두고 “소시지”라고 설명했다. “어차피 내일 VIP 행사 때는 지금과 전혀 다른 설명을 할 테니 내 작품에 대해 알아서 아무렇게나 해석하라”는 그의 발언에는 트래펄가 광장 조각상 앞에서 런던 시장과 영국 기자들에게 보여준 최소한의 가식적 예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두 기업체 전시 공간이 선택한 이번 프로그램은 쏠쏠한 대중적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대림산업이 1996년 설립한 대림문화재단은 2002년 개관한 대림미술관에 이어 지난해 말 용산구 디뮤지엄을 새로 열었다. 관람객 40만 명을 동원한 지난해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등 줄곧 승승장구 흥행을 이어왔다. 6월 개관한 현대카드 스토리지는 깔끔한 미술 전시 공간의 전형에서 탈피해 폭넓은 시각예술 콘텐츠를 품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창고형 전시 시설이다.

 그러나 미술계에서는 이들 전시 공간의 행보에 대해 “이미지 마케팅 수단일 뿐 문화적 자산의 사회적 공유 활동이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컬렉션, 작가, 전시기획 전문 인력을 육성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해외 인기 전시 상품을 구매해 들여와 당장의 화제몰이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 두 곳 모두 전시 공간을 갈구하는 국내 작가를 외면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영국 기업가 헨리 테이트가 설립한 테이트 재단, 미국 석유 부호 폴 게티가 세운 게티 미술관 등 진정한 메세나(문화예술지원) 사업의 요지는 예술품 소유의 경계를 허문 데 있다”며 “서울 호림박물관, 화정박물관처럼 특색 있는 컬렉션을 차분히 쌓으면서 그 결과를 대중과 공유하는 선례를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해외 작가전#닉 나이트#데이비드 슈리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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