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수·기계의 수…‘반상의 폭풍’속으로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3월 16일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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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 사진제공|구글
이세돌 9단. 사진제공|구글
■ ‘이세돌 vs 알파고’ 5국 관전기

○ 알파고
● 이세돌 9단 <280수 끝, 백 불계승>

‘최선’이 ‘최고’보다 빛났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대결로 세상의 눈을 집중시켰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가 막을 내렸다. 이세돌은 5국에서 흑 불계패를 당해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에게 종합전적 1승4패를 기록했다.

15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특별대국실에 들어서는 이세돌의 얼굴은 지난 네번의 대국 때와 달리 밝았다. 3연패 끝에 13일 천금같은 1승을 올린 덕이다. 이 한 판의 승리로 이세돌은 벼랑 끝에 섰다가 돌연 등짝에 날개가 돋으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대반전을 일으킬 수 있었다.

5국에서 이세돌은 자신이 요구한 대로 흑을 쥐었다. 덤 7집반이 부담되지만 “백으로 이겼으니(4국) 흑으로도 이겨보고 싶다”며 과감히 흑을 자청했다. 4국에서 알파고의 약점을 봤던 것일까. 초반부터 이세돌이 ‘눈에 띄는’ 작전을 들고 나왔다. 부지런히 모양을 정리하고 집을 챙겨 나갔다. 자신은 ‘확실’하게 두어 놓고, 백이 ‘불확실한’ 집 모양을 키우면 뛰어들어 타개에 승부를 걸겠다는 뜻이다.


<장면1>. 백이 1로 중앙에 커다란 집 모양을 그렸다. 이 바둑을 방송에서 해설하고 있던 프로기사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세돌이 어디까지 들어갈 것인가. 그런데 흑2가 떨어졌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상식의 날일자. 이 정도로 나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인간’의 냄새가 물씬 나는, 친숙한 한 수이다. 상변의 수순은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백11. 흑2를 보면서도 중앙을 건드리지 않고 백11로 하변을 지켰다. 냉정하다. 이것은 기름 냄새가 물씬 나는 ‘기계’의 수이다.

<장면2>. 알파고가 백1로 좌하귀를 지켰다. 흑은 중앙을 두는 것이 일감이다. 백의 진영에서 유영하고 있는 흑돌들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로 보인다. 하지만 이세돌은 흑2로 좌하귀에 수를 내러 갔다. 이로 인해 반상에 폭풍이 일었다. 중앙의 전장은 느닷없이 좌하귀로 옮겨졌다.

백의 280수를 보고 돌을 거둔 이세돌의 얼굴은 홀가분해 보였다. 이번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알파고를 초읽기까지 몰아붙이며 분투했다. 졌지만 참 잘 싸웠다. 사실은 이세돌과 알파고 모두의 손을 높이 치켜 올려주고 싶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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