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의 대마, 알파고의 포위망을 뚫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3월 14일 05시 45분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4국에서 백을 든 이세돌 9단이 첫 착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구글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4국에서 백을 든 이세돌 9단이 첫 착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구글
■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4국 관전기

인간은 두지 않을 수…알파고의 패착
이세돌, 결국 대마 살리며 승기 굳혀

○ 이세돌 9단
● 알파고
<180수, 백 불계승>

결코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인공지능의 벽이 무너졌다. 세 판이나 연달아 지고도 포기할 줄 모르고 일어서는 ‘인간’ 이세돌의 투혼을 보고 있자니 뱃속에 응어리져 있던 뜨겁고 뭉클한 뭔가가 목구멍으로 솟구쳤다.

13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특별대국실에 이세돌이 들어섰다. 잔뜩 긴장한 얼굴. 우승과 100만 달러의 상금은 전날 3국을 패하며 날아가 버렸다. 이쯤 되면 홀가분한 표정을 지어도 괜찮으련만 이세돌은 지난 세 판의 대국 때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의 어깨 위에는 ‘인간’의 무게가 지워져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지난 세 판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보여주었던 상식과 사고의 영역을 넘어선 바둑의 세계. 이세돌은 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늘은 2000년 바둑사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날이다.


<장면1>. 흑3이 관전자들의 동공을 키운 알파고의 착점이었다. 인터넷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에서 해설을 하고 있던 한종진 9단의 입에서 “억!”소리가 나왔다. 옆에서 함께 이 바둑을 관전하고 있던 이상훈 8단 역시 “어이가 없다”며 머리를 흔들었다. 이상훈 8단은 이세돌의 친형이기도 하다. 사람이 뒀다면 욕을 한 바가지 먹어야 할 수지만 지난 세 판의 대국을 통해 알파고의 강함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던 프로기사들은 말을 아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지만, 그래도 알파고가 뒀으니…”하며 말을 아꼈다.

흑3은 백4의 자리로 두는 게 상식이다. 백이 3으로 두어 흑▲ 넉 점을 잡도록 강요한 뒤 중앙으로 손을 돌려 백 대마를 노리는 흐름이다. 실전 흑3·5로 인해 바둑은 백이 기분 좋은 형국이 되었다.

<장면2>. 역사적인 순간이다. 백이 1로 들여다보고 흑이 4로 잇자 5로 이었다. 이것으로 백의 대마는 흑의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탈출하게 되었다. 백1은 ‘인간의 바둑’으로 치면 “이겼습니다”하는 승리의 선언과도 같은 수이다. 이후 이세돌은 단 한 번도 알파고에게 승기를 내어주지 않고 결승선까지 달렸다.

지치지도 않고(지칠 리가 없겠지만) 끈질기게 추격전을 벌이던 알파고는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자 스스로도 민망한지(민망할 리도 없겠지만) 180수만에 백기를 내걸었다.

10승 같은 1승을 이세돌이 올렸다. 이세돌의 마지막 도전은 하루 휴식 뒤 15일 같은 장소에서 속개된다. 최종국에서도 <장면2> 백1의 “이겼습니다” 수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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