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케빈 컨 “눈을 감으면 귀가 환히 열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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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내한공연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케빈 컨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만난 미국 피아니스트 케빈 컨은 “14일은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로서 희망을 준 멘토 조지 시어링(1919∼2011)의 5주기다. 내가 만든 음악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뉴 에이지를 택한 이유”라고 했다. 헉스뮤직 제공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만난 미국 피아니스트 케빈 컨은 “14일은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로서 희망을 준 멘토 조지 시어링(1919∼2011)의 5주기다. 내가 만든 음악으로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뉴 에이지를 택한 이유”라고 했다. 헉스뮤직 제공
“당신(기자)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었고 안경을 썼군요. 당신 눈, 코, 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표정인지는 묻지 마세요. 하하하. 저한테 세상은 초점이 완전히 나간 사진처럼 보이니까요.”

2000년 한류를 이끈 드라마 ‘가을동화’는 귀로도 기억된다. 클라리넷의 애잔한 선율을 품은 송혜교의 테마 음악 ‘Return to Love’(QR코드)와 ‘Le Jardin’.

이들을 만들고 연주한 미국의 대표적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케빈 컨(58)이 14일 오후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5년 만의 내한공연을 열었다. 그의 음반 표지와 곡 제목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하지만 그는 선천성 시각장애인이다.

컨은 생후 18개월에 피아노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연주해 집안을 놀라게 했다. “저와 피아노가 분리된 기억이 없어요. 네 살 때부터 거실 조명을 모두 끈 채 피아노 앞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주체할 수 없이 슬플 때, 또 기쁠 때 가장 먼저 달려간 것도 제 친구, 피아노의 품이었죠.” 그는 “어릴 때 야구 같은 야외활동 대신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제한된 시각이 준 선물”이라며 웃었다.

그에게 한국은 ‘가을동화’ 이상이다. 인터뷰 도중 그가 가방에서 아이패드와 미니 건반을 꺼냈다. 첨단기술로 건반과 관현악 편곡을 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면서. ‘심포니 프로’란 앱을 실행한 그가 아이패드를 향해 “세 번째 마디, 시…” 하고 말하자 화면에 음표가 그려졌다. “앱 개발자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필립 리예요. 한국인 2세죠. 시각장애 음악인들이 그의 기술로 희망을 가졌으면 해요.”

컨은 ‘너무 편리하다’고 했지만 선천적 손 떨림까지 지닌 그는 코앞의 아이콘도 여러 번 헛짚었다. 옆에 있던 여성이 기자에게 ‘매니저 패멀라 기브스’라 쓰인 명함을 내밀었다. 컨의 부인이다. “1995년 PC통신으로 처음 만나 결국 사랑에 빠졌죠. 영화 ‘유브 갓 메일’처럼요. 하하.”

“패멀라를 위해 쓴 곡이에요. 밸런타인데이에 그녀를 위해 바칩니다.” 이날 무대에서 컨은 두 번째 곡으로 ‘Love‘s First Smile’을 연주했다. 2001년 결혼한 둘은 미니애폴리스 시 외곽 숲 지대에 산다. 그곳의 대자연은 컨에게 보이는 것보다 많은 걸 들려준다. 사슴, 여우, 칠면조, 코요테 울음이 이루는 오케스트라 소리와 희미한 초록의 조합. 거기서 그의 음악이 태어난다. ‘가을동화’를 봤냐고 묻자 화면을 볼 수 없는 컨을 위해 기브스가 드라마 장면을 설명해 줬다고, “너무도 아름다웠다”고 답했다.

‘힐링 뮤직’으로도 불리는 그의 음악이 자신을 치유한 적도 있을까. “2006년 싱가포르에서 고교생이 제 곡을 연주하는 걸 봤어요. 표현력이 대단했죠. 제 음악을 들으며 처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소년은 청각장애인이었어요.”

14일 공연에서 컨의 연주는 티 없이 맑았다. “눈이 안 보여 아쉬운 것 중 하나는 별밤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 관점의 밤하늘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컨이 ‘A Million Stars’ 연주를 시작했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흑백의 건반이 아닌 듯했다. 투명한 것. 바람에 흔들리는 포플러의 초록 잎사귀, 잠든 호수의 파란 수면을 비추는 거울…. 컨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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