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남들이 하는 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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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은 아랫집 할머니를 피해 다녔다. 툭하면 사소한 일로 시비를 걸어오니 피하는 게 상수였다. 이웃 간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해해 주고 넘어가 주는 법이 없고 동네에서 다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난 요주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 아줌마가 놀랍다는 얼굴로 “새댁, 새댁이 어떻게 했기에 그 할머니가 새댁 칭찬을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 할머니가 누굴 칭찬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놀랍기는 새댁도 마찬가지였다. 마주치면 예의바르게 인사는 하지만 속으로는 미워했는데 할머니가 칭찬의 말을 했다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더 알 수 없는 것은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난 후 변해 가는 자기 자신이었다. 먼발치에서 할머니를 보게 되면 피하지 않고 다가가 더 상냥하게 인사를 하게 되더라는 것. 그러다 보니 나중엔 서로 진짜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딸을 결혼시키면서 지인은 “부부 싸움을 하더라도 엄마에게 전하지는 말라”는 지침을 주었다. “너는 다음 날이면 남편과 풀고 다 잊어버릴 수 있겠지만 나는 사위에게 서운하고 괘씸한 감정이 오래 남을 수 있다”고 했다는 것. 누구나 살다 보면 부부 싸움을 할 수 있고 싸움을 하다 보면 도를 넘는 말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막상 딸에게서 그런 말을 전해 들으면 사위의 한마디 한마디가 뇌리에 박혀 뒤끝이 남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부부 싸움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다. 균형을 잃지 않고 친구의 하소연을 들으려고 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점점 열이 오르며 화가 난다. 차마 “야, 헤어져라”는 말을 내뱉지는 못하지만 다음에 그 남편을 만나면 미운 감정이 남아 있어 표정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 어느새 ‘부부 화해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즐거워하는 친구의 전화는 나의 감정을 무색하게 한다. 내 가슴엔 아직도 친구 남편의 못된 말들이 앙금으로 남아 마음이 무거운데 정작 당사자들은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이 태평스럽기만 하다.

아, 말의 유통기한은 너무나 짧아 그 현장에서 그 순간에만 유효한 것임을 깨닫는다. 말이란 대부분 만약 그때 그 공간에서 상대가 마침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꺼내지도 않았을 그런 것들이기 쉽다. 좋은 말은 전하여 세상을 향기롭게 하되 나쁜 말은 그냥 그 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게 하는 게 상책일 수 있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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