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실험실]“완벽한 男主-귀여운 女主는 불변공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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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작가 첨삭지도와 함께 로맨스 웹소설 써보기

‘위험한 신입사원’ ‘위험한 신혼부부’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 박수정 작가(오른쪽)와 기자. 박 작가는 기자의 삼각관계 웹소설에 대해 “로맨스 독자가 원하는 것은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사랑을 이루는 과정”이라며 “최고의 남자를 정해 무게를 확 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위험한 신입사원’ ‘위험한 신혼부부’ 등으로 큰 인기를 누린 박수정 작가(오른쪽)와 기자. 박 작가는 기자의 삼각관계 웹소설에 대해 “로맨스 독자가 원하는 것은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사랑을 이루는 과정”이라며 “최고의 남자를 정해 무게를 확 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야한 소설을 공공장소에서 종이책으로 읽을 때와 전자책으로 읽을 때의 주변 반응은? 디지털 문법이 문학을 어떻게 바꿨을까? ‘덕후’를 혐오하는 여성에게 로봇 피규어를 만들게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문화실험실’에 답이 있다. 각종 문화현상을 기자가 체험과 실험을 통해 다양한 관점으로 비틀어 보는 이 코너를 연재한다. 첫 회는 ‘웹 소설 써보기’다. 》

대세는 ‘웹소설’이다. 지난해 네이버 연재 웹소설 조회수는 18억 건. 연간 수입이 억대가 넘는 웹소설 작가들도 생겼다. 어떤 신세계일까? 기자는 ‘도전! 웹소설 쓰기’의 저자 박수정 작가(34)를 20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나 웹소설 쓰기 실전 특강을 받았다.

기자가 써서 올린 로맨스 웹소설 ‘뱀파이어 PD의 은밀한 취향’의 요약. 인터넷 캡처
기자가 써서 올린 로맨스 웹소설 ‘뱀파이어 PD의 은밀한 취향’의 요약. 인터넷 캡처
박 작가는 10년 차 로맨스 작가다. 현재 네이버에 연재 중인 ‘위험한 신혼부부’는 조회수 1위다. 지난해 웹소설로 번 돈은 3억 원이 넘는다.

먼저, 기자가 준비한 스토리를 이야기했다. “수습 PD 재연, 대학 시절 짝사랑했던 보도국 기자 김서훈, ‘뱀파이어 PD’란 별명의 강훈 등 입사 3, 4년 차 젊은이의 풋풋한 삼각 로맨스라고 설명하자 박 작가의 표정이 굳어진다.

“노(No) 노! 로맨스 웹소설은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예요. ‘남주’(남자 주인공)가 평범한 3, 4년 차 PD나 기자면 안 돼요. ‘남주’는 ‘삼시세끼’의 나영석처럼 잘나가거나 방송사 사주 아들처럼 ‘여주’(여자 주인공)를 이끌 권력이 있어야 해요. 로맨스의 ‘클리셰’(상투적 상황)입니다.”

그래서 입사 4년 차 PD 강훈은 대박 시청률을 내는 천재 PD 팀장으로 변경됐다. 기자가 “남성이 무조건 우월하면 여성들이 반발한다”고 주장하자 박 작가는 “로맨스 웹소설을 구매하는 독자는 직장과 육아에 시달리는 30대 여성이에요. 이들에게 로맨스 웹소설은 현실을 견디는 한 조각 꿈이에요. 비현실적이니까 재미있고 보고 싶은 것”이라며 톡 쏘았다.

‘교회 오빠’ 같은 훈남 주인공 외모도 박 작가의 지도로 이렇게 바꿨다. ‘쌍꺼풀 없이 시원하게 뻗은 눈매. 신비감을 주는 갈색 눈동자. 딱 좋을 정도의 오뚝한 콧날과 유기농 계란형의 완벽한 얼굴 선. 태어나서 본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합쳐서 제일 충격적인 비주얼….’

“요즘 웹소설에는 삽화가 들어가는데, 강동원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그 다음에 김수현, 조인성…. 이 완벽한 남자에게 아픈 과거나 결핍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들이 안아주고 싶은 모성애를 느껴요. 다만 ‘왕따’는 안 됩니다. 주인공이 ‘찌질’해 보이면 안 좋아요.”

“‘여주’ 외모는 AOA 설현 정도, 어떨까요?”(기자)

기자는 또 혼났다. “로맨스 웹소설의 꽃은 ‘남주’예요. ‘여주’가 너무 늘씬하고 예쁘면 안 돼요. 소녀시대 윤아 이미지면 독자와의 거리감이 ‘안드로메다’예요. 약간 예쁜 얼굴에 작고 귀여운 이미지. 소녀시대에선 써니같이 묘사해야 감정이입이 됩니다.”

기자는 신입 PD 재연이 드라마 녹화테이프를 지워 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강훈이 능력을 발휘해 재연을 도와준다는 식으로 1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박 작가는 역시 고개를 저었다.

“저라면 재연이 방송국에 처음 출근해서 초절정 미남 강훈을 만나는 순간 ‘×됐네’라고 외치면서 1회를 끝낼 겁니다. 무슨 사연인지 궁금해야 2회를 봐요.”

웹소설에서 매출이 높은 콘텐츠는 ‘19금’ 로맨스다. 기자가 설정한 남녀 주인공의 섹스 장면을 설명하자 박 작가는 손사래를 쳤다. “그건 야설이에요. 여자는 성행위에서 오는 자극이 아닌, 로맨틱한 감정이 중요해요. 신체 부위나 자세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면 안 돼요.”

러브신 묘사는 “그의 성난 무언가가 왔다”는 식으로 일일이 고쳤다. ‘금방 쓰겠는 걸’이란 자만심은 특강 후 산산조각이 났다.

결국 세밀한 감정선, 발랄한 대사 등 무엇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뱀파이어 PD의 은밀한 취향’이란 제목으로 1회를 네이버 챌린지 리그에 올렸다. 1시간도 안 돼 목록 첫 화면에서 한참 밀려 찾기 힘들어졌다. 이 리그에 올라오는 새 작품은 하루 평균 300여 개. 박 작가의 조언이 떠올랐다.

“웹소설이 큰돈이 된다고 하니 모두들 뛰어드는데요. 저요? 7년 동안은 한 달에 20만 원 벌기도 어려웠어요. 인내를 가지세요.”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웹소설#박수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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