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출세-벽사 상징하는 길상의 동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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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속 원숭이 의미

원숭이가 게를 잡는 장면을 그린 조선 후기 회화 ‘안하이갑도’. 과거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뜻이 담겼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원숭이가 게를 잡는 장면을 그린 조선 후기 회화 ‘안하이갑도’. 과거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뜻이 담겼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벼랑 위의 잿빛 원숭이가 소나무 가지를 꺾어 게를 향해 내밀고 있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영장류답게 가지로 게를 잡으려는 속셈이다. 수묵화로 그린 원숭이의 움직임이 생생하다. 조선 후기 회화 작품인 ‘안하이갑도(眼下二甲圖·고려대박물관 소장)’의 한 장면이다. 민물이나 바다에서 사는 게를 절벽 위의 원숭이가 사냥하는 설정이 다소 뜬금없기까지 하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에서는 과거를 준비하는 자손들에게 게를 잡는 원숭이 그림을 자주 선물했다. 나름의 독특한 축원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해석은 이렇다. 한자로 원숭이 후(후)는 제후 후(侯)자와 음과 획이 비슷해 높은 관직을 뜻한다. 여기에 게를 지칭하는 갑(甲)자는 과거에서 1등(장원)을 가리킨다. 결국 원숭이가 게를 잡는 것은 과거에서 장원 급제해 높은 벼슬에 오르라는 기원인 셈이다.

이처럼 원숭이는 우리 전통문화에서 재주가 많고 영리한 영물(靈物)로 통했다. 각종 그림과 문방구, 도자기 등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출세 혹은 벽사((벽,피)邪)를 상징한다. 설화와 가면극에서 원숭이는 재주꾼으로 등장한다.

원숭이의 해인 내년 병신년(丙申年)을 앞두고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이 ‘한국 문화에 나타난 원숭이의 상징성’ 논문을 최근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2간지에서 아홉 번째인 원숭이는 선사시대부터 친숙한 동물이었다. 실제 평양 상원군 검은모루 동굴과 충북 청원군 두루봉, 제천 점말 동굴 등에서 원숭이 뼈가 발견됐다.

신라시대 무덤에 원숭이 토우(土偶·사람이나 동물, 기물 등을 흙으로 빚은 것)가 부장될 정도로 원숭이는 유사 이래 길상(吉祥)의 상징물로 받아들여졌다. 신라 토기 파편에 붙어 있는 원숭이는 얼굴과 몸체를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해 눈길을 끈다. 가야금을 타는 원숭이 토우도 재주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원숭이는 부모 자식 간의 깊은 사랑을 표현할 때도 자주 애용된 소재다. 고려시대 청자나 연자 등에는 원숭이 모자상이 유독 많이 보인다. 예컨대 12세기 고려시대 청자원형연적(靑磁猿形硯滴·간송미술관 소장)이나 청자모자원형서체(靑磁母子猿形緖締)는 어미 원숭이가 새끼를 품에 안고 있는 형상을 담아냈다. 흔히 창자가 끊어지는 커다란 슬픔을 뜻하는 단장(斷腸)도 새끼 원숭이를 잃고 애통한 나머지 목숨을 잃은 어미 원숭이를 다룬 중국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숭이의 유별난 새끼 사랑이나 공동체 의식은 동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다.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링테일여우원숭이는 새끼가 태어나면 온 무리가 흥분 상태로 돌입하면서 앞다퉈 새끼를 안아주거나 혀로 핥아주는 행위를 한다. 털 다듬기 등 애무 빈도를 측정한 친밀도 조사에서도 어미와 새끼의 수치가 가장 높게 나타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원숭이#병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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