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을 쓰는 사람’ 시인 박용하의 시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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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10월 23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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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하루. 가을만 있는 하루. 가을 천지. 내 사는 마을이 너무 이뻐 몽땅 아작아작 씹어 먹고 싶은 하루였다.”(‘2011년 10월 1일 일기’ 중)

33년 간 ‘시를 쓰며 산’ 남자의 일상은 뭔가 특별하지 않을까.
통렬하고 질박한 언어로 날 것의 일상을 한 줄로 새기는 시인 박용하가 2010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쓴 5년 치 일기를 엮은 책 ‘시인일기’를 냈다.

“일기는 지금의 미래다. 살았지만 다시 살게 될 미래. 나는 타인이 되었다가 다시 타인이 되어 돌아온다.”(‘2014년 7월 25일 일기’ 중)

이 책은 경기도 양평 시골마을에 사는 시인의 투박한 시골 일기이기도 했다가, 한 개인의 원초적인 일상, 날 것 그대로의 성찰이 담긴 작가의 내면 일기이기도 하다. 흐르는 일상 속에서 치열하게 끓어오르는 작가로서의 삶과 문학을 이야기한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하얀 여백 속 수놓은 짧은 아포리즘도 인상적이다.

경험으로 체득한 시골생활의 지혜는 기억해 둘만 하다.
“시골서 살며 사람을 급히 불러야 할 때,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모르면, 여러 전호번호 중 그 지역 이름을 쓰고 있는 상호에 전화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들은 뜨내기가 아닌 것이다.”(‘2011년 12월 29일 일기’ 중)

‘한 줄을 쓰는 사람’이라는 시인의 일기에는 유독 가을에 관한 노래가 많아, 요즘 읽기 딱이다.

강원도 강릉 교산에서 태어난 박용하 시인은 198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2015년 제1회 시와반시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나무들은 폭포처럼 타오른다’, ‘바다로 가는 서른세 번째 길’, ‘영혼의 북쪽’, ‘견자’, ‘한 남자’와 산문집 ‘오빈리 일기’를 펴냈다.

“내 삶은 오늘도 어김없이 줄어들었다. 그날 그밤 거기서 썼던 문장은 이제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날 그밤 거기서 종말을 맞았다. 그 밤의 눈빛과 그 밤에 씌어졌던 문장의 눈빛은 그 밤에 엄연히 속해 있었다. 그밤 나와 함께 했던 사람도 그러하다. 나는 그 밤을 생각하지만 네 아픔을 데려올 수 없듯이 그밤 역시 이곳으로 데려오지 못한다. 그때 그 시간에만 가능했던 불가능한 문장의 감각과 찰나의 영원. 감각의 생사마다 빛 떨리듯 피는 꽃과 숨 멎듯 지는 잎들. 어둠 아래 어둠. 두 번이 아닌 삶과 사람과 그 고요하고 격정적이고 섬세하고 열렬하고 전투적인 사랑의 밤을. 언어의 사랑을. 말의 헌신을.”(‘작가 서문’ 중)

동아닷컴 디지털뉴스팀 기사제보 dnew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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