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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조선시대 미인 기준은 ‘쌍꺼풀 없는 작은 눈’

입력 2015-10-21 03:00업데이트 2016-05-04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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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과 미인도
조선시대 여성을 표현한 그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히는 신윤복의 ‘미인도’. 간송미술관 소장
여성들이 모여 그네를 타고 목욕을 하고 있는데 빡빡머리의 사내아이(동자승)들이 바위 뒤에 숨어 목욕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는 모습, 깊은 달밤에 남의 눈을 피해 남녀가 몰래 만나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 제목은 모르더라도 직접 그림을 보면 “아하 그것”이라고 할 만한 조선시대 풍속화입니다. 모두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1758년∼?)이 그린 멋진 작품이지요. 신윤복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풍속화가입니다. 단원 김홍도와 더불어 조선시대 풍속화의 쌍벽으로 불렸을 정도로 유명했답니다. 혜원은 ‘난초가 있는 정원’이라는 뜻입니다. 호의 뜻이 매우 아름답지요.

○ 신윤복이 여자였다고?

2008년 전후,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드라마, 영화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신윤복을 여자로 그려 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신윤복을 여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신윤복은 정말로 여자였을까요? 소설이나 대중문화 속에서는 신윤복을 여인으로 묘사했지만 신윤복은 여자가 아닙니다. 그럼 대중문화에서는 왜 신윤복을 여자로 묘사한 것일까요? 흥미를 위해 가상으로 설정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신윤복을 여자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신윤복에 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관련 기록이 없다는 말이지요. 그렇다 보니 신윤복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양한 상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신윤복이 남긴 작품을 보면,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 데다 매우 섬세하고 화사하기 때문에 신윤복을 여자로 상상해 볼 수는 있겠지요.

작자 미상 ‘미인도’. 해남 녹우당 소장
○ 가장 아름다운 여인, ‘미인도’

2008년 가을,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앞에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수백 m에 걸쳐 길게 줄지어 섰습니다. 대체 무슨 작품이 전시되어 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사람들의 관심을 끈 작품은 다름 아닌 신윤복의 ‘미인도’였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어떤 그림이냐고요? 조선시대 여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매혹적으로 그려 낸 작품입니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여성을 그린 우리나라 그림 가운데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독보적이지요.

아담한 얼굴에 작은 아래턱, 좁고 긴 코에 다소곳한 콧날, 약간 통통한 뺨과 살짝 다문 작은 입, 흐리고 가느다란 실눈썹에 쌍꺼풀 없는 작은 눈, 가녀린 어깨선과 풍만하게 부풀어 오른 치마, 치마 밑으로 살짝 내민 왼쪽 버선발…,

주인공의 눈빛을 볼까요? 고개는 숙였지만 눈은 살짝 먼 데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움과 아련함이 짙게 묻어나는 애처로운 눈빛이지요. 이 여인의 눈은 작고 쌍꺼풀이 없습니다. 요즘엔 쌍꺼풀이 있는 큰 눈을 좋아하지만 조선시대엔 쌍꺼풀 없는 작은 눈을 미인의 눈으로 여겼답니다.

○ 조선시대 여성 패션의 모든 것

신윤복 ‘미인도’의 주인공은 머리에 큼지막하게 머리카락을 틀어 올렸습니다. 이런 머리를 트레머리라고 하는데, 일종의 장식용 머리라고 할 수 있어요. 조선 후기엔 부녀자들 사이에서 이 트레머리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신윤복의 그림 속 여성은 대부분 이처럼 트레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이 입은 저고리는 최고급 삼회장저고리입니다. 이 여인은 다소곳이 서서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채 옷고름에 달아 놓은 삼작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노리개는 한복 저고리의 고름이나 치마의 허리에 다는 장신구를 말합니다. 장신구를 다는 술이 하나면 단작노리개, 술이 세 개면 삼작노리개라고 하지요.

이번엔 치마를 볼까요? 배추포기처럼 부풀어 올라 있네요. 조선 후기 미인도에는 이런 치마를 입은 모습이 많이 나타납니다. 이로 보아 배추포기 치마는 여성 패션에서 크게 유행했던 것 같습니다.

작자 미상 ‘미인도’.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 여성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후대의 미인도들은 모두 이와 흡사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조선 후기 미인 그림의 전범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전남 해남 녹우당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인도’를 보면 신윤복 그림과 인물의 자세, 패션, 분위기 등이 매우 흡사하지요.

모두 아름다운 미인도이지만 서로 비교해 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 ‘미인도’는 신윤복 그림에 비해 여인의 포즈가 좀 더 동적(動的)이군요. 하지만 트레머리나 얼굴 표정은 신윤복의 미인도보다 섬세함이 떨어져 보입니다. 해남 녹우당 ‘미인도’는 트레머리가 지나치게 커 다소 부담스러워 보입니다. 부풀어 오른 치마는 신윤복 ‘미인도’에 비해 부자연스럽습니다. 세 작품을 비교해 보면 신윤복의 ‘미인도’가 표현이나 분위기 등에 있어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신윤복 이전에도 여성이 등장하는 그림이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여성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본격적인 미인도는 없었습니다. 여성을 이렇게 과감하게 화면 한복판으로 끌어내 당당하게 배치한 것은 신윤복이 처음이었지요. 남성 중심 사회였던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이고 과감한 실험이었습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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