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스스로에게 의지하면 인생은 최후까지 내 것이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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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여성 미술가 시노다 도코 作 ‘103세가 돼서 알게 된 것’

“스물넷에 집을 나와 평생 혼자 살며 고독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타인에게 과도한 기대나 애정, 미움을 갖지 않았다. 자신의 발로 서 있는 사람은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법이니까.”

혼자 사는 이들 중 상당수는 노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산다. 늙으면 외롭지 않을까, 아프면 보살펴줄 사람은 있을까. 최근 서점에 독신 여성을 위한 조언이 넘쳐나는 것도 이런 불안 심리를 반영한 것일 테다.

하지만 이 책 ‘103세가 돼서 알게 된 것-인생은 혼자라도 괜찮아’는 다른 책들과 좀 다르다. 먼저 저자가 103세의 여성이다. 평생 혼자 살아왔지만 지금도 전시회를 열며 왕성하게 미술 활동을 하는 시노다 도코(篠田桃紅) 씨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3년 태어났다. 학생 시절에는 사랑의 도피와 단신 유학을 감행했던 영어 선생님을 보며 자유로운 삶을 동경했고, 졸업 직후 바로 결혼하는 것이 보통이었던 시절 과감히 독립해 서예 교사가 됐다.

서예가로서 도쿄 긴자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당시 일본에선 헤이안 시대의 글씨를 따라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시노다 씨는 주류를 따르지 않은 탓에 “재기발랄하지만 뿌리가 없다”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뿌리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전쟁 중에는 결핵으로 죽을 뻔하다 살아났고 이후 먹을 이용한 추상화가로 이름을 얻었다. 대담한 구도와 선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43세에 훌쩍 미국으로 떠나 뉴욕에서 예술 활동을 하기도 했다.

시노다 씨가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유’다. 그는 책에서 몇 가지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소개했다.

먼저 목표를 세우지 않는 것. 그는 “목표를 세우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목표를 위해 멋진 것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싫었다.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는 대신 자유를 원하는 마음이 내가 가야 할 길을 만들었다”고 썼다.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나처럼 무책임한 사람도 없다. 미국에 갈 때도 ‘당신 작품을 미국에 소개합시다’ 하는 사람이 나타나 ‘그렇습니까’ 하고 미국에 갔다.”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미술가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채 혼자 작품 활동을 해 왔다. 시노다 씨는 “어떤 의무도 책임도 없어 홀가분하다. 자유라는 단어의 뜻 그대로 스스로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고독하다는 생각은 없다. 스스로에게 의지하면 인생은 최후까지 내 것이 된다”고 썼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담담한 자세를 견지한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100세가 넘으니 매일 늙는 것이 손에 잡힐 것처럼 실감난다. 조금씩 무(無)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죽음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진리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절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책에서 장수의 비결을 찾으려는 이들은 다소 실망할 것 같다. 특별한 비결이 없기 때문이다. 시노다 씨는 반세기 전부터 같은 집에 거주한다. 매일 밥을 세 끼 먹고 소녀 시절부터 입던 옷을 아직도 입는다. 옷 취향이 수십 년 동안 한결같아서 미국에 있을 때도 일본식 신발인 조리를 신었다고 했다. 시노다 씨는 “일종의 유아독존인데, 주위와 달라도 된다고 자신에게 말해 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길지 않고 간결하지만 나이가 느껴지는 내공이 인상적인 책이다. 구석구석 유머러스한 표현도 눈에 띈다. “이 나이가 되니 누구와 대립할 일이 없고, 누구도 나와 대립하려 하지 않는다. 100세는 세상의 ‘치외법권’이다. 모임에 안 가도 뭐라는 사람이 없는 대신 가면 매우 기뻐한다.”

이 책은 4월 발간된 이후 지금까지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순위를 유지하며 35만 부 이상 팔렸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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