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 김고은 “현장서 만난 ‘엄마’ 김혜수는 상상 이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2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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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진짜 초인들은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29일 개봉하는 영화 ‘차이나타운’은 독특한 지점에 선 작품이다. 국내 최초로 여배우 2명이 중심을 잡은 본격 느와르이면서도, 극장을 나서면 수많은 상념을 헤매다 ‘가족’이 떠오른다. 연출을 맡은 한준희 감독의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이고 단출하다. 차이나타운 암흑가에서 자라난 일영(김고은)과 모두가 ‘엄마’라 부르는 보스(김혜수)가 우연한 일로 갈등을 빚으며 파국으로 치닫는 스토리. 허나 감독은 피로 얼룩진 밑바닥 세계를 잿빛 그리스 비극으로 빚어냈고, 배우들은 무대 위 뿌연 먼지를 거둬내고 단단한 현실에 작품을 곧추 세웠다. 22일 두 슈퍼히어로 김혜수 김고은을 만나봤다.

김혜수 인터뷰

-냉혹한 범죄조직 보스를 연기했다.

“처음엔 여러 번 거절했다. 시나리오는 강렬했지만 부담이 컸다. 수정대본을 보내도 일부러 안 봤다. 도전의식 생길까봐. 근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읽고 있는 게 아닌가. 또 스스로 빠져든 거지. 게다가 감독의 한 마디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게 마지막 연출이 되더라도 자기 첫 영화는 차이나타운’이라고. 그렇게 인생을 거는데 어떻게 더 거부하겠나.”

-외모도 완전히 망가뜨려 더 힘들었겠다.

“또 그건 아니다. 결정한 뒤부턴 너무 신났다. 백발에 기미 가득한 얼굴, 살은 뒤룩뒤룩 찌고 ‘배바지’ 입은 여성보스. 진짜 변신이 뭔지 보여줄 기회가 어디 흔한가. 첫 야외촬영 때 김혜수 보러온 시민들이 날 몰라보더라, 하하. 엄마는 이런 외양이 아니고선 설명되지 않는 캐릭터다. 그걸 제대로 표현하고자 노력하는 건 배우의 당연한 의무 아닌가.”

-엄마는 섬뜩하면서도 처연한 슬픔이 감돈다.

“영화 차이나타운이 그린 세계는 극단적이다. 평소 만날 일이 없는. 엄마는 그걸 온몸으로 새긴 인물이다. 길에서 우연히 엄마를 마주친다고 상상해보자. 그저 쳐다볼 뿐인데 온몸이 얼어버리지 않을까. 허나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가족이 산다. 그 버텨온 세월이 다양한 감정의 중층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김고은과의 호흡은.

“딱 한 마디면 충분하다. 좋은 배우다. 연기자로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더라. 좋은 얼굴에 깨끗한 감정에 영민한 두뇌까지. 이런 배우가 발굴돼 관객 앞에 설 수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차이나타운’은 그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미 지금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지만 더 빛을 발할 날이 분명히 온다.”

-작품이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됐다.

“그거야 감독 덕분이지. 물론 칭찬 받고 상도 받으면 기분이야 좋다. 하지만 그건 이미 제 몫이 아니다. 배우는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하다. 그 밖의 일은 무심해진다. 물론 연기자로서 아쉬운 평가를 받으면 언제나 가슴에 새긴다. 아직도 배울 게 많고 도전할 게 많다. 삶이 그러하듯이.”
김고은 인터뷰

-영화가 잔인한데 묘한 따스함을 지녔다.

“그게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였다. 지하철 보관함 10번에서 발견돼 이름이 일영인 이 아이는 차이나타운이 세상의 전부다. 딱 한번 바깥세상을 궁금해 하며 돌이킬 수 없는 삶으로 나아간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울컥울컥했던 기분이 지금도 남아있다. 사실 그런 인생을 어찌 알겠나. 하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을 깊이 건드렸다. 범죄세계다 보니 잔인한 장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봤다.”

-일영을 흔들었던 석현(박보검)에 대한 사랑인가.

“아니다. 그건 일종의 호기심이다. 자신이 몰랐던 세상에 대한. 영화에서도 엄마가 묻는다. ‘걔 어디가 좋았냐’고. 일영의 대답은 ‘친절해서.’ 냉혹함 밖에 몰랐기에 겨우 한 줌의 친절함이 그렇게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오히려 일영의 사랑은 차이나타운으로 향한다. 그에게 조직은 가족이다. 평생 살아왔고 돌아갈 곳이라곤 거기뿐이니까.”

-김혜수와의 호흡은 어땠나.

“지금도 혜수 선배를 만나면 스타를 바라보는 팬이 된다. 데뷔 4년차인데 여전히 신기하고 쑥스럽다. 대스타라 긴장도 컸는데 현장에서 만난 선배는 상상 이상이었다. 따뜻하고 소탈하고 배려 깊고…. 스스로 행운아란 생각을 많이 했다. 여배우가 극을 이끄는 느와르는 한국시장에서 여전히 쉽지 않은 도전이다. 선배가 중심 잡고 엄마를 연기해줘서 이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었다.”

-데뷔작 ‘은교’(2012년)부터 강렬한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이젠 정. 말. 멜로 하고 싶습니다! 아, 물론 ‘차이나타운’에도 멜로가 있다, 흐흐. 예전부터 밝고 단순한 사랑 얘기 노래를 불렀다.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도, 깊고 내밀한 관계도 다 좋다. 차이나타운처럼 처음 접한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가 주는 느낌이 같은 작품이라면 언제든 오케이다.”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경쟁한다.

“뭐, 여러 번 겪어 덤덤하다. ‘은교’ 개봉 다음날 ‘어벤져스’가 걸렸고, 지난해 ‘몬스터’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랑 겹쳤다. 미국 초인하고 맞붙는 게 팔자인가 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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