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괴짜 천재의 기이한 삶, 영화같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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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앤드루 호지스 지음/김희주 한지원 옮김/872쪽·3만6000원·동아시아

1951년 엔지니어들과 함께 ‘마크1’ 컴퓨터 콘솔을 보고 있는 앨런 튜링(왼쪽). 튜링이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개발한 ‘마크1’은 최초의 현대 컴퓨터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동아시아 제공
1951년 엔지니어들과 함께 ‘마크1’ 컴퓨터 콘솔을 보고 있는 앨런 튜링(왼쪽). 튜링이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개발한 ‘마크1’은 최초의 현대 컴퓨터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동아시아 제공
수학자 앨런 튜링에게 붙는 천재와 괴짜, 비극적인 운명이라는 수식어는 대중의 관심을 끌어 튜링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튜링의 삶을 정형화된 모습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앤드루 호지스는 20여 년에 걸쳐 논문과 관련 기사, 서신, 회의록 같은 자료를 수집하고 튜링을 아는 인물을 인터뷰해서 튜링의 삶을 재구성해 냈다. 튜링의 사후 어머니인 세라 튜링이 쓴 전기보다도 더 자세하다는 평가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어린 시절의 독특한 일화, 발명과 화학, 천문학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졌던 학창 시절 모습은 튜링이 진리를 추구하는 수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준다. 튜링의 삶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 독일군 암호 해독도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튜링의 기행의 원인을 단지 괴짜였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솔직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던 태도, 관료적인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던 성격은 이성과 진리를 최우선으로 놓았던 수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장점은 튜링의 삶과 이론에 대한 설명을 적절히 버무렸다는 것이다. 튜링이 생전에 겪었던 지적인 여정을 관련 이론과 함께 자세히 소개한다. ‘힐베르트의 결정 문제’를 연구하며 컴퓨터 과학의 기초를 쌓거나 소수의 규칙성을 다루는 ‘리만 가설’이 거짓임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던 일화는 수학 이론에 관심이 많은 독자의 지적 욕구도 만족시킬 수 있다.

기자는 2012년 튜링의 마지막 제자였던 버나드 리처즈 영국 맨체스터대 의료정보학과 교수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튜링을 떠올리며 “평소 진지하게 연구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으며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만약 자신의 삶을 자세히 다룬 전기가 나왔다는 것을 알면 튜링은 기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튜링과 같은 인물에 대해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면 그것도 후세에 저지르는 죄가 될 것이다.

고호관 수학동아 편집장 ko@donga.com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앨런 튜링#이미테이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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