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딸이 그린 엄마 얼굴… 이게 진짜 모습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엄마의 초상화/유지연 글·그림/32쪽·1만2000원·이야기꽃

이야기꽃 제공
이야기꽃 제공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엄마가 된 여자는 자기 이름을 잃습니다. 아이 돌보랴 살림하랴 정신없이 지내다 어느 새 거울 속 낯선 얼굴과 마주하게 되지요. 오래가는 파마머리, 울퉁불퉁한 발, 바싹 마른 손에서 세월을 봅니다. 하지만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거나 생선 대가리를 맛나게 발라 먹고 욕실에 쭈그려 앉은 채 양말을 빨고 있어도 엄마는 꽃무늬 옷을 입은 여자, 미영 씨입니다.

여기 두 개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하나는 딸이 그린 엄마 얼굴, 다른 것은 어느 길거리 화가가 그린 것입니다. 딸에게 익숙한 엄마 얼굴과 처음 본 화가 눈에 든 엄마 얼굴은 많이 다릅니다. 대학 시절 과제로 작가 유지연은 ‘있는 그대로’의 엄마 얼굴을 그린 모양입니다.

엄마는 딸이 그린 초상화를 구석에 내버려둡니다. 자기가 그린 초상화를 맘에 들어 하지 않는 엄마에게 섭섭한 건 당연했겠지요. 딸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또 누군가의 며느리가 아닌 한 사람의 여자, 미영 씨의 참모습을 딸도 알아봅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탐험가라도 좋고, 농염한 립스틱에 화사한 흰 모자를 쓰고 꽃을 찾아 떠날 만큼 열정적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서로 다른 엄마 모습이 양쪽에 펼쳐집니다. 주목할 것은 오른쪽 페이지에 그려진 자유롭고 재미있는 미영 씨 모습이 사각의 틀에 갇혀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다 떠나기로 결심한 미영 씨는 여행 가방을 들고 틀 밖으로 한 발을 내딛습니다. 그 다음을 펼친 면 한가득 여행을 즐기는 미영 씨 모습이 시간 흐름에 따라 그려집니다. 긴 여행 끝에 돌아온 엄마의 방에는 초상화 두 개가 나란히 있습니다. 길거리 화가의 초상화를 담은 액자, 여행 가방, 건조대에 걸린 꽃무늬 티셔츠, 색깔도 모두 분홍빛입니다.

미영 씨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엄마가 되었지만 가슴속 열정은 방 한편에 남겨두었습니다. 다 큰 딸들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오래도록 잊었던 우리 엄마의 진짜 얼굴, 엄마로 살다 지친 자신의 얼굴을 찾길 바랍니다.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