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t 십자가 망치질 작업 내내 교황의 따뜻한 미소가 맴돌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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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대형십자가 제작 맡은 대장장이 차인규씨-에스텔 수녀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이틀 앞둔 12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제대 설치가 한창인 서울 광화문광장.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이틀 앞둔 12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제대 설치가 한창인 서울 광화문광장.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십자가가 우뚝 섰다. 8m 솟대 위에 올려진 가로 320cm, 세로 420cm의 대형 십자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광화문에서 집전하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을 위해 제작됐다.

스테인리스로 만들었는데 마치 자개장 같은 질감이었다. 사진을 찍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색감이 만들어졌다.

시복식 제대 뒤에 설치되는 십자가를 직접 디자인한 황 마리아 에스텔 수녀와 제작한 차인규 씨.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시복식 제대 뒤에 설치되는 십자가를 직접 디자인한 황 마리아 에스텔 수녀와 제작한 차인규 씨.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십자가를 만든 사람은 대장장이 차인규 씨(57)다. 그는 공업용 헬멧을 쓴 채 이날 십자가 설치 작업을 위해 온종일 광화문광장을 뛰어다녔다. 십자가를 디자인하고 시복식 제대 설계와 배치 작업 등을 총괄한 스승예수의제자수녀회 소속 황 마리아 에스텔 수녀도 막판 무대 점검으로 분주했다.

차 씨는 “한 달 동안 제작한 십자가가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만큼 매우 떨린다”며 연신 손을 비볐다. 그는 황 수녀가 설계한 십자가 도안을 토대로 6월부터 경기 양주시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아들 동은 씨(27) 및 동료 3명과 함께 제작에 나섰다.

스테인리스 1.25t이 들어간 대형 십자가의 제작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15∼20cm씩 불에 달군 뒤 대장용 망치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두들겨 펴거나 굴곡을 만들어냈다.

“한여름에 하루 8시간 이상씩 불 앞에서 일하다 보니 온몸에 땀띠가 나 꽤 고생했어요. 하지만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시복 미사에 사용될 대형 십자가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힘을 낼 수 있었죠.”

이를 일일이 용접해 이어 붙이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솜씨 좋게 철제 이음매마다 구슬 모양의 장식도 만들어냈다.

“십자가 표면 작업이 가장 힘들었죠. 십자가가 빛을 받을 때마다 다양한 색깔을 낼 수 있도록 대장용 망치를 내려치는 작업을 셀 수 없이 했어요.” 덕분에 자개로 만든 것 같은 은은한 느낌이 묻어났다.

종교가 없다는 그는 이번에 십자가를 제작하며 가톨릭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작업 기간 내내 프란치스코 교황의 따뜻한 미소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며 “이번 기회에 가톨릭 신자가 돼 보려고 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옆에 있던 아들은 “작업한 모든 사람이 땀띠가 났는데 아버지가 ‘가문의 땀띠, 영광의 땀띠’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차 씨가 제작한 십자가는 액자구조 형태다. 십자가 안에 십자가 모양의 빈 공간을 만들어 냈다. 이 도안은 황 수녀가 3월 만들어 5월 바티칸 교황청의 승인을 받는 과정을 거쳤다.

황 수녀는 “십자가의 아랫부분을 빼고 사방을 뚫어 이중 구조의 십자가를 만들어냈다”며 “모두를 포용하겠다는 하느님의 의지를 표현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십자가를 만들 때 쇠를 불에 달구고 망치로 내려치는 과정에서 오색 빛깔이 나는데 인간의 삶 자체가 오색찬란하지 않느냐”며 “마무리 작업이 끝났을 때 십자가는 전체적으로 은빛을 나타내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죽고 난 뒤 하느님 앞에 모여 하나가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십자가#차인규#에스텔 수녀#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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