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가면 빵집 겸 카페 ‘이 맛집’에 꽂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9일 11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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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맛집 부댕(Boudin)

샌프란시스코의 명물빵집 부댕의 클램차우더 스프. 사워도우의 속을 파내어 담아낸다. 미국관광청 제공.
샌프란시스코의 명물빵집 부댕의 클램차우더 스프. 사워도우의 속을 파내어 담아낸다. 미국관광청 제공.
샌프란시스코(미국 캘리포니아 주). 왠지 친근하다. 가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도. 왜 그럴까. 하도 들어 익숙해진 이름 덕분일 거다. 그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 금문교(Golden Gate Bridge), 케이블카(Cable Car) 그리고…, 아! 이 노래도 생각난다. 'If you going to San Francisco'(당신이 만약 샌프란시스코를 찾는다면)로 시작하는. 다음 가사가 아마 머리에 꽃을 꽂으라던가 뭐 그럴 거다. 그런데 난 토니 베넷(미국 재즈싱어의 전설)의 노래가 더 좋다. 훨씬 로맨틱해서다. 제목부터 그렇다.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샌프란시스코'(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그럼 영화는? 너무 많아 다 열거하기도 힘들다. 우선 생각나는 것부터. 미세스 다웃파이어, 퍼시픽 하이츠, 더 록…. 가장 최근 것은 '혹성 탈출: 진화의 시작'이다. 그러면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마 모두가 '더 록'을 꼽을 거다. 그런데 이 두 작품 모두 샌프란시스코에는 이단 격이다. 왜냐면 '로맨틱'의 핵심인 금문교와 케이블카를 가차 없이 때려 부숴서다. 더 록을 보자. 샌프란시스코 만의 교도소 섬 앨커트래즈를 초토화시킨 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상징이자 명물인 케이블카를 페라리 F355 스파이더로 들이받아 박살낸다. '혹성 탈출'에선 금문교가 전투기의 공중폭격으로 풍비박산난다.

나는 운 좋게 이 도시에서 한 달가량 살아봤다. 나이가 새파랗던 대학 4학년, 1981년 여름이었다. 주머니에 달랑 5달러 지폐 몇 장 넣고 버클리대 기숙사에서 매일 40분 이상 걸리는 전철로 찾아가 운동화 바닥이 닳도록 걸으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던 시절이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특별했다. 미국에서 거의 사라졌다던 히피가 여전했다. 동성애자도 그 도시에선 이미 자유로웠다. 피셔먼스 워프의 피어서티나인(Pier 39·39번 부두 관광지)은 지금과 달리 선창의 풋풋함이 돋보이던 곳이다. 바트(BART·Bay Area Rapid Transit)라고 불리는 전철이 그해서야 개통한 만큼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발전 이전의 고전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추억 때문인지 나의 샌프란시스코 사랑은 남다르다. 살아봤다는 게 그저 한 달뿐인데도 내 마음이 송두리째 던져진 듯 애정이 깊다. 그런데 그런 샌프란시스코에서 체험해 보지 못하고 온 게 하나 있다. 음식이었다.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초행길 미국에 온 가난한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먹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는 햄버거, 피자도 레스토랑 음식처럼 여겼던 촌티 나는 시절이었으니 당연하다. 그래서 여행전문기자가 되어 15년 만에 다시 찾고, 이후 취재를 갈 때마다 나의 관심은 샌프란시스코의 음식에 꽂혔다.

그중 하나가 '부댕(Boudin)'이라는 빵집 겸 카페인데 핵심은 '사워도(Sourdough)'라는 빵이다. 뭔 빵이길래 샌프란시스코 맛집에 넣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빵 맛 때문이란 걸 알고 나면 절대 그런 소리 못한다. 정말 맛있는 빵은 그게 한 음식 하기 때문이다. 이게 그런 빵인데 샌프란시스컨이 죽고 못 살 정도다. 사워도는 '시다'(사워)와 '반죽'(도)의 합성어. 말 그대로 시큼하다. 솔직히 우리야 쌀이 주식이다 보니 빵 맛을 품평하는 건 어렵다. 그거라면 의당 서양인 그네들 몫일 터. 그런데 이 사워도란 게 1849년 부댕 패밀리가 처음 만든 후 이제껏 캘리포니아 주 전체에서 명품대접을 받는 걸 보면 기막힌 빵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나도 이 식당을 찾아가 맛을 보았다. 그런데 그 빵 맛이 내 입맛에도 잘 맞았다. 그래서 이후에도 빼놓지 않고 찾는데 그러다보니 요즘은 한국에서도 생각날 때가 있다. 특히 바닷가에서 석양을 보노라면 피셔먼스 워프의 부댕 카페에 앉아 클램차우더(Clam Chowder)를 떠먹으며 바라보던 황혼 비치 풍경이 생각난다. 이 식당에선 클램차우더 수프를 빵 덩어리의 속을 파고 거기에 담아 주는데 그 빵 역시 사워도다. 참고로 클램차우더는 조개(대합)를 넣고 진득하게 끓인 국물. 우리나라로 치면 된장국마냥 미국사람들이 누구나 평소 즐기는 대중적인 수프다. 물론 동부의 뉴잉글랜드지방, 거기서도 메인 주의 클램차우더를 최고로 치지만.

앞으로 샌프란시스코 여행길에 부댕의 빵집카페에서 이 사워도를 맛보려는 사람들을 위해 이 집 내력을 좀 소개하겠다. 부댕가(家)는 프랑스 이민자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라는 지명이 생기기도 전에 거기 정착했다. 그러니까 토박이 중에도 토박이다. 그 부댕가가 사워도를 개발한 건 우연이었다. 프랑스에서 하던 대로 빵 반죽을 해서 굽는데 신맛 나는 이상한 빵이 나온 것이다. 원인은 이 지역에만 발견되는 효모균. 자연 상태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토박이 효모균이 프랑스빵의 반죽에 들어가 발효작용을 일으킨 탓에 부드러운 신맛의 사워도가 나온 것이다. 화학적으로 신맛의 출처는 유산균에서 발생한 젖산으로 효모균은 유산균이었다.

이 희대의 빵이 처음 나온 것은 1849년. 그런데 이해는 미국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해다. 샌프란시스코를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토록 이끈 '골드러시'가 공표된 바로 그해여서다. 골드러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메리카 강에서 사금이 발견되자 그걸 캐기 위해 전 세계에서 노다지꾼이 몰려든 사건을 말한다.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주민 수 증가세를 보면 안다. 1847년 미 해군 제독에 의해 샌프란시스코가 멕시코 땅에서 미국영토로 선포된 당시만 해도 주민은 1000명뿐이었다. 그런데 부댕 베이커리가 개업한 1849년엔 2만 명으로 2년 만에 20배로 는다.

그리고 골드러시는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의 DNA가 되었다. 그걸 증명하는 것은 도처에 널려 있다. 우선 샌프란시스코의 축구팀 이름, 포티나이너스(49ers)다. 1949년에 빗대 당시 노다지꾼을 부르던 별명이다. 그 축구팀의 치어리더팀도 같은 맥락이다. 이름이 '골드러시'니까. 샌프란시스코의 관광도로 '주도49호선'도 같다.

내 생각에 부댕가는 골드러시 때 떼돈을 벌지 않았나 싶다. 수만 명의 노다지꾼이 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먹을 만한 빵을 만드는 곳은 여기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면 지금은 어떨까.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나 평생 한 번쯤 찾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으니 말이다. 나 같은 사람까지도 가고 싶어 하니 이 빵집이 사람들로 넘쳐날 것은 당연지사. 캘리포니아 주 전체에 산재한 29개나 되는 지점(북부 21, 남부 8개)이 그걸 말해준다. 빵집카페는 샌프란시스코 시내에만 7개. 중심은 역시 관광객이 가장 북적대는 피셔먼스 워프다.

이곳 피어서티나인에 가면 '부댕 베이커리 앤 카페'가 있다. 음식 먹고 쉬기에 좋은 곳이다. 그런데 부댕의 빵에 좀더 관심을 갖는다면 피셔먼스 워프의 부댕 박물관을 찾는 게 좋다. 거기는 박물관을 비롯해 베이커스 홀, 비스트로 부댕, 데몬스트레이션 베이커리가 한데 몰려 있어 '부댕 콤플렉스(종합관)'라 할 만하다. 베이커스 홀은 빵 맛을 볼 수 있는 부댕카페와 커피숍, 그리고 캘리포니아 북부의 농산물도 쇼핑할 수 있는 상점가. 비스트로 부댕은 가벼운 식사와 술을 즐기는 곳이고 데몬스트레이션 베이커리는 폭 10m의 통 유리창으로 제빵사의 수작업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설이다.

현재 이 부댕카페의 마스터셰프는 페르난도 파딜라. '파파 스티브'라고 불렸던 전 주인에게서 열일곱 살 때부터 제빵 기술을 전수받아 28년째 빵을 만들고 있다. 휘하에 38명의 제빵사를 두고 있다. 여행자로 처음 부댕 카페에 들른다면 추천메뉴로 클램차우더 수프(8달러29센트·480㎈)와 '베스트 오브 부댕'(9달러49센트)을 권한다. 베스트 오브 부댕은 네 가지 중 두개를 골라 먹는 메뉴. 클래식샌드위치(절반)와 수프, 스프링샐러드(小)와 시저샐러드(小)에서 고른다. 여기서 수프를 접시가 아닌 사워도 빵에 담아 먹고 싶다면 1달러25센트만 더 내면 된다. 사워도는 샌프란시스코 말고도 미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원조는 하나, 샌프란시스코의 부댕 베이커리 앤 카페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www.boudinbakery.com

조성하 전문기자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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