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뭘 추구하느냐고? 좋아하는 빗소리를 거기 담고 싶다.” 서울 중랑천 뚝방길에서 촬영해 한지에 인화한 최근작 ‘오리엔탈1’ 앞에 앉은 사진작가 김중만 씨.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나는 사진작가 김중만. 이제 예순이다.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물으면 ‘날라리’라는 답이 적잖을 거다. 이 나이에 귀걸이와 문신이라니.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렵다. 속상하지 않을 리 있나. 그렇다고 ‘나 실은 이런 사람입니다’ 말로 할 수는 없다. 성취로 이야기할 때다. 내년 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가 그 출발점이다.”
―이곳(서울 성동구 더페이지갤러리·02-3447-0049)에서 9월 28일까지 여는 ‘No More Art’전 참여는 내년을 위한 준비인가.
“본게임 앞둔 프리뷰다. 내년 4월 8일부터 중국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에서 3개월간 개인전을 연다. 5월 9일부터는 6개월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Arsenale)에 참여한다. ‘동방(East)’을 주제로 한 진경산수(眞景山水) 사진 30점, 집 근처 중랑천 뚝방길에서 촬영한 30점을 전시한다.”
―나뭇가지, 새, 하늘을 한지에 인화했다. 먹물처럼 번진 이미지가 수묵화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준다.
“나무가 알려준 표현법이다. 건축폐자재 더미 곁에 먼지와 냄새 뒤집어쓰고 반쯤 꺾여 선 나무 한 그루에 10년 전 물었다. ‘내가 널 찍을 수 있는 사람일까?’ 2008년 4월 어느 날 나무가 ‘찍어도 돼’라고 답해줬다. 그때부터 카메라를 들이댔다. 올 10월까지 찍는다.”
중랑천 연작 중 ‘Are You Going With Me’(2011년). 100점을 묶어 책으로 낼 예정이다. 더페이지갤러리 제공―목표하는 이미지를 정하고 시작한 작업이 아니었나.
“몇 장 찍고 말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보잘것없는 개울가가 40년 사진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됐다. 진경산수 발상도 거기서 나왔다. 한라산 촬영을 막 마쳤고 다음 달 백두산 들어간다. 외국 작가가 섣불리 손댈 수 없는 건 결국 아시아의 이미지다. 그들과 경쟁해 살아남을 수 있는 주제와 방법을 중랑천길 나무가 알려줬다. 그곳은 이제 내게 성지(聖地)다.”
―의료봉사 떠난 부친 따라 열여섯 살 때 아프리카로 갔다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파리에서 첫 전시를 열었다. 최근 들어 새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돌아보게 된 건가.
“젊을 땐 파리나 뉴욕, 아니면 차라리 아프리카가 서울보다 편했다. 중랑천에서 내가 이렇게 긴 시간 촬영하리라고 생각 못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곳을 걸으며 다시 생각했다. 전혀 예상 못한 ‘한국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게 내 작업 태도를 크게 바꿨다.”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과도 전시 논의를 했다. 세계의 큰 무대로 초대받는 기분이 어떤가.
“베니스 비엔날레 초청장을 읽고 생각했다. ‘아, 내가 처형장 출두 선고를 받았구나.’ 조금이라도 빈틈 보이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면 나는 거기서 사진작가로 살아 돌아올 수 없다. 유럽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아시아에서 특이한 외모의 사진가가 왔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나쁘지도 않지만 그리 놀랍지도 않다면…?”
―스스로 어떤 차별성을 갖췄다고 보는지….
“지금 사진예술의 대세는 안드레아스 구르스키(독일) 같은 사회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내 사진은 휴머니즘 쪽이다. 거대한 임팩트의 상징적 이미지를 추구하지 않는다. 힘없이 부러진 나뭇가지 몇 개. 내 의문은 이렇다. 예술에서 사회주의가 확산되는 동안 세상 빈부 차는 더 커지지 않았나? 예술은 인류에게 ‘답’을 주는 작업인데… 영혼의 답이든 현실의 답이든. 사회주의적 예술이라는 답안은 지금, 공허하다.”
―세계 사진예술 패러다임을 바꾸고 싶나.
“그렇다. 중요한 건 비주얼이 아니다. 멋진 곳에 가서 행복한 이미지를 찍는 건 쉽다.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진에 담는 작업은 다르다. 뚝방길 나무를 잘 찍으려면 죽을 각오로 발버둥쳐야 한다.”
―‘처형장’에서 돌아오면 무엇을 하고 싶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거나 사라지거나. 죽기 아니면 살기다. 좋은 성과를 내고 싶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없이 말한 뒤, 인도 바라나시로 떠날 거다. 몇 달 전 30여 년 만에 혼자 여행 다녀온 곳이다. 카메라를 방에 두고 아무것도 찍지 않으며 열흘 보냈다. 사진 찍지 않는 게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마음 가볍고 행복했다. 미련한 강박… 이제 내려놓고 싶은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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