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후기詩 46편에 담긴 ‘이상의 암실세계’

  • 동아일보

◇續 이상의 시 괴델의 수/김학은 지음/312쪽·1만7000원·보고사

이상의 초기 난해시 46편의 비밀을 풀어낸 김학은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68)의 ‘이상의 시 괴델의 수’의 속편이다. 전편은 이상의 시 ‘一九三一年’을 토대로 ‘이상한 가역반응’과 ‘오감도’ 같은 그 초기시가 1931년을 기점으로 이뤄진 천체물리학과 수학의 혁명적 연구 성과를 시적으로 변용해 수(數)와 시(詩)의 통섭을 꿈꾼 산물임을 밝혀냈다. (본보 2월 19일자 A21면 참조)

속편은 1932년 발표된 수수께끼 같은 산문 ‘지도(地圖)의 암실(暗室)’을 기점으로 이상의 후기시 46편이 암실세계에 갇힌 자신의 신변에 대한 심정을 담아냈음을 보여준다. ‘지도의 암실’은 괴델이 1931년 발표한 ‘불완전성정리’를 이상이 분명히 터득했음을 보여준다.

불완전성정리는 모든 수학적 논리체계 내부에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함을 입증한 것이다. 괴델은 그 입증과정에서 s를 ‘바로 다음’이란 뜻의 기호로 썼다. ‘지도의 암실’에선 이 s를 우리말 ‘또’로 바꿨다. ‘다섯, 또 다섯, 또또 다섯, 또또또 다섯’은 숫자 5, 6, 7, 8을 괴델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 0과 1이란 이진법, 참과 거짓, 삶과 죽음으로 포착할 수 없는 세계를 담아야 하는 문장의 불완전성을 상징한다. 저자는 제목의 ‘지도’가 x축과 y축의 함수관계(mapping)로 설정된 좌표라는 점에서 수학적 함수이자 문장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암실’은 ‘앙뿌을르(전구)에 봉투를 씌워서’ 빛을 감소시킨, 그리하여 빛과 어둠의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모순율을 상징한다. 이 둘을 합친 ‘지도의 암실’은 미완성 지도에서 ‘모르는 땅’으로 표시된 곳이자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모순의 문장인 것이다.

‘지도의 암실’은 1932년 2월 13일 또는 14일 단 하루에 벌어진 일을 다뤘다는 점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1922년)를 떠올리게 한다. 이상은 이 작품에서 괴델적 모순이 무한 확대되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 웃음의 순서를 뒤집어 표현한 ‘소파노(笑파怒)’의 심성으로 포착한다. 이는 폐결핵에 걸려 죽음에 쫓기는 자기연민과 결합해 증폭된다. 그리고 ‘꽃나무’와 ‘거울’ 같은 이상의 후기시에서 이런 소파노의 심성을 분석해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續 이상의 시 괴델의 수#지도의 암실#불완전성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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