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 vs 책]‘환경’ 외치는 대통령보다 쓰레기 줍는 市長이 낫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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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도시 지는 국가/벤자민 바버 지음·조은경 최은정 옮김/584쪽·2만8000원·21세기북스
◇작은 도시 큰 기업/모종린 지음/300쪽·1만4000원·알에이치코리아

다음 달 4일이면 한국에선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하지만 요즘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열기가 떨어진다. 지방선거가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을 세우는 중요한 일이란 걸 모르진 않건만, 아무래도 훨씬 ‘정치적으로 중요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보단 관심이 덜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 연달아 나온 ‘뜨는 도시 지는 국가’와 ‘작은 도시 큰 기업’을 읽는다면 이런 생각이 조금은 바뀔 듯도 싶다. 사실 두 책은 선거나 정치 관련 서적은 아니다. 담고 있는 내용도 결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관심이 왜 중요한지, 거창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생활 속 실천에 따른 변화가 왜 필요한지를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함께 읽어봄 직하다.

먼저 미국 뉴저지 주 럿거스대 명예교수인 노장 사회학자가 쓴 ‘뜨는 도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식에 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는 책이다. 누구나 인식하듯, 현 지구는 기후변화와 민족·종교 갈등, 테러와 빈곤 같은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더이상 국가(혹은 정부)는 이를 해결하거나 조율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책상머리에서 입씨름이나 하는 정부 간 국제기구에도 기대할 게 없다. 더이상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한계에 봉착한 국가를 뛰어넘는 ‘도시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핏 과격하게 들리는 이 제안은 기본바탕을 잘 살펴봐야 한다. 저자는 국가의 대안으로 도시를 설정한 게 아니다. 국가 정부라는 거인들의 틈새시장에서 비교적 유연하고 발 빠른 대처가 가능한 시 정부의 시스템이 효율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제언이다. 다시 말해, 정부기구에 비해 훨씬 덜 정치적이고 보다 더 생활밀착적인 도시기구가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는 논리다.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역사를 살펴보면 도시란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체제를 갖출 수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중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불리함을 이겨내고 독자적 균형을 이뤄낸 건 ‘도시’라는 유연성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북스 제공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역사를 살펴보면 도시란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체제를 갖출 수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중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불리함을 이겨내고 독자적 균형을 이뤄낸 건 ‘도시’라는 유연성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1세기북스 제공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거대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상황을 보라. 나름 지속적으로 갈등 해결에 전력을 투구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나, 막상 나오는 결과물은 속 시원한 게 없고 그저 그런 수준이다. 하지만 이를 뉴욕과 홍콩, 또는 워싱턴과 상하이 같은 도시가 협력을 추구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치적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현실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실제로 최근 ‘세계 도시 네트워크’는 상당히 활발하게 작동 중이다. 지난해 서울이 사무국을 유치해 화제를 모았던 아시아·태평양 지역 다자간 지방정부연합체인 시티넷(CITYNET)을 비롯해 다양한 도시 연합기구들이 가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지역경제는 물론이고 환경과 안보 같은 이슈에서도 느릿느릿한 국가 연합체에 비해 신속하게 합의를 이뤄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각 도시로 적용하는 과정도 아무래도 정부보다는 체감속도가 높다.

스위스 소도시 브베의 레만 호수엔 찰리 채플린 동상과 포크를 형상화한 설치미술작품이 눈길을 끈다. 이 도시는 배우인 채플린이 생애를 마친 곳이자, 포크가 상징하는 세계적 식품회사 네슬레가 탄생한 땅이다. 소박하되 자연친화적 삶을 중시하는 브베 스타일은 네슬레의 기업이념에 영향을 끼쳤다.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스위스 소도시 브베의 레만 호수엔 찰리 채플린 동상과 포크를 형상화한 설치미술작품이 눈길을 끈다. 이 도시는 배우인 채플린이 생애를 마친 곳이자, 포크가 상징하는 세계적 식품회사 네슬레가 탄생한 땅이다. 소박하되 자연친화적 삶을 중시하는 브베 스타일은 네슬레의 기업이념에 영향을 끼쳤다. 알에이치코리아 제공
‘뜨는 도시…’가 도시 중심의 변혁이란 거대담론을 다루고 있다면, ‘작은 도시…’는 보다 실제적인 도시 번영의 현장을 살핀 책이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로 미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위원인 저자는 세계적 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있는 작지만 내실 있는 해외 중소도시들을 직접 찾았다. 저자가 보기에 이 도시들은 대기업을 유치했기에 경쟁력을 획득한 게 아니다. 자체적으로 특색 있는 도시문화를 잘 가꾼 덕분에 훌륭한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자양분을 공급하는 저력을 갖추게 됐다.

세계적인 가구회사 이케아의 본사가 있는 스웨덴 알름훌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총 인구가 1만 명이 채 되지 않지만, 근검절약과 실용주의 정신을 최고 미덕으로 치는 곳이었다. “저렴하고 실용적이며, 단순하면서 깔끔한” 이케아의 기업문화는 바로 대대로 이어진 도시의 생활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스타벅스가 탄생한 미국 시애틀이나 프랑스 항공 산업의 허브가 된 툴루즈 역시 지방도시와 기업이 문화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한 본보기다.

물론 두 책의 기본적 ‘대전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모든 도시는 국가에 속한다. 도시 중심의 혁신도 국가가 받쳐줄 때나 가능하다. 자기 도시의 이득이란 근시안에 빠져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꽤나 많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미 현대사회에서 도시 인구는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개발도상국은 78%)을 차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이 원칙에 얽매이는 동안, 시장(市長)은 쓰레기를 줍는다”는 제언은 참 의미심장하다. 오히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도시 문제에 훨씬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목소리만 큰 사람이 아니라 진짜 우리의 앞마당을 쓸고 닦을 인재를 뽑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지방선거#뜨는 도시 지는 국가#작은 도시 큰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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