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재구성]‘오빠’라는 말, 친족 아니면 정말 못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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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땐 남자동기 지칭… 20세기 들며 남녀연애 암시

밴드 장미여관과 노홍철이 지난해 발표한 노래 ‘오빠라고 불러다오’를 열창하고 있다. MBC 제공
밴드 장미여관과 노홍철이 지난해 발표한 노래 ‘오빠라고 불러다오’를 열창하고 있다. MBC 제공
일상이나 TV 드라마에서 결혼한 여성이 배우자를 ‘오빠’라고 불렀다가 시댁 어른께 혼이 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정말 친남매가 아니면 오빠란 말을 쓰면 안 되는 걸까?

오빠와 관련된 단어가 처음 등장한 문헌은 조선 영조 때 언어학자 황윤석(1729∼1791)이 지은 어원연구서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이다. 이때 어형은 ‘올아바(오라바)’였다. ‘이르다’는 뜻의 접두어 ‘올-’과 ‘아바(아버지 또는 남자)’가 결합한 것으로 ‘아버지보다 어리고 미숙한 남자’ 정도로 해석된다. 이후 19세기 말 문헌에 ‘옵바’, 20세기 초반에는 ‘업바’ ‘오e’ ‘오빠’로도 등장한다.

19세기까진 주로 손위나 손아래 남자동기를 지칭할 때 두루 쓰이다 20세기 들면서 혈연이 아닌 남녀 사이에서 오빠-동생 호칭이 등장한다. 하나님 앞에 평등한 형제자매라는 기독교 개념과 ‘확대된 가족’으로서 민족 개념이 도입되면서 평등한 남녀관계의 호칭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광수의 소설 ‘무정’(1917년)에서 주인공 이형식은 이 같은 이유로 기생 계향에게 오빠로 불리고 싶어 한다. 전통적 신분 질서가 파괴됐음을 나타내는 장면이다. 이후 소설 속에서 ‘옵바’라는 말은 젊은 남성에 대한 젊은 여성의 성적 호감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이광수의 ‘재생’(1925년)에 등장하는 윤 변호사가 자신의 약혼녀 선주에게 “여보시오, 인제부터 그 사람더러 오빠라고 마시오! 오빠는 무슨 오빠란 말이오? 그 사람이 무슨 친척이란 말이오? 나는 그 말이 듣기가 싫소!”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오빠가 남녀 연애를 암시하는 기호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오빠를 이렇게 정의한다. ①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이이거나 일가친척 가운데 항렬이 같은 손위 남자 형제를 여동생이 이르거나 부르는 말. ②나이 어린 여자가 손위 남자를 정답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

21세기에도 남성들은 여전히 오빠로 불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오늘날 오빠라는 호칭에 성적 불평등성이 숨어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빠라고 부르는 순간, 둘 사이에 나이에 따른 권력관계가 생겨나고 여성은 보호할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참고: 이경훈의 ‘오빠의 탄생’, 조항범의 논문 ‘오빠와 누나의 어원’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오빠#친족#어원#남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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