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 러브 스테이지] 닭살 돋는 대사마저 이토록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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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0월 18일 07시 00분


인우(강필석 분)가 태희(전미도 분)의 신발 끈을 매어주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명장면. 동명의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번지점프를 하다’는 시공간을 초월한 애절한 사랑을 소재로 여성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명품 뮤지컬이다. 사진제공|뮤지컬해븐
인우(강필석 분)가 태희(전미도 분)의 신발 끈을 매어주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명장면. 동명의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번지점프를 하다’는 시공간을 초월한 애절한 사랑을 소재로 여성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명품 뮤지컬이다. 사진제공|뮤지컬해븐
■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다시 태어나도 너랑 사랑할거야” 인우의 대사
감성 충만한 연기력으로 보는 내내 가슴 시려
시공간 초월한 사랑…동명 영화 감동 그대로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인우가 태희에서 던지는 대사다. 이 대사는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이하 ‘번지점프’)의 주제를 한 줄로 표현해 놓은 것과 같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랑이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한다.

바닥에 놓인 샹들리에가 은은한 오렌지 빛을 뿌리고, 중앙 무대를 둘러싼 여러 개의 문에 남녀의 실루엣이 비치는 가운데 합창이 흐르는 첫 장면부터 인우(강필석·성두섭)와 남자 제자 현빈(이재균·윤소호)이 두 손을 잡고 다음 생을 약속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번지점프’는 뭉클한 감성으로 가득하다. 보고 있는 내내 가슴 한 구석에 시린 이가 돋아나는 느낌이다.

● 유채화를 그리듯 덧칠해 나간 감성의 힘

이병현과 이은주가 출연한 동명의 2001년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번지점프’는 12년이 지난 지금 봐도 파격적인 발상의 영화다. 사랑했던 여인이 환생을 하고, 그것도 고등학교 교사인 남자의 제자(여자도 아니고 남자다)로 환생해 전생에서 못 다한 사랑을 이어간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만화도 아니고, 무대작품에서 이런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어지간한 내공이 없으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살짝만 삐끗해도 어줍지 않고, 뜬금없이 흘러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번지점프’는 그런 점에서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난 사랑할 수밖에 없어. 그냥 믿어”라고 관객을 향해 윽박지르지도 않는다. 대신 묵묵히, 서두르지 않고, 유채화를 그리듯 감성을 덧칠해 나간다. 그렇게 한켠 한켠 쌓인 감성이 막판에 가서 설득력을 얻는다. 관객들 마음속의 시린 이는 그렇게 돋는다.

● 인우의 손을 잡은 것은 관객이었다

인우는 ‘번지점프’의 중심이다. 운명의 여인 태희를 만나고, 입대하는 날 사고로 그녀를 보내고, 17년이 지나 환생한 제자의 모습에서 태희를 발견해 나가는 인우는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탐을 낼 수는 있어도 아무나 할 수는 없는 배역이다.

여자의 어깨를 붙들고 “난 다시 태어나도 너만 찾아다닐 거야. 악착같이 찾아서 다시 너랑 사랑할 거야”라는 대사를 닭살스럽지 않게, 관객의 감성에 바늘을 꽂듯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못 믿겠으면 당장 거울을 보며 이 대사를 한번 읊어 보시길.

강필석은 잘 조련된 오케스트라가 음을 쌓아 올리듯 인우의 감정을 켜켜이 쌓았다. 끊임없이 인내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오르며 관객을 다독였다. 마침내 단 한 번의 폭발. 정상에 오른 인우는 제자의 손을 잡고 벼랑 끝에 선다. 그의 손을 잡은 것은 제자 현빈이 아닌, 어둠 속에서 흐느끼고 있던 이날의 모든 관객이었을지 모른다.

지긋지긋하도록 아름다운 뮤지컬이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품일지 모른다.

■ 이거 놓치면 후회할 걸!

● ‘눈 부릅’ 뜨고 봐야할 명장면


인우와 태희의 두 번째 만남. 친구들에게 등을 떠밀린 인우는 조각상을 들고 가던 태희 앞에 서지만, 머뭇머뭇 말을 건네지 못 한다. 인우는 뜬금없이 몸을 굽혀 그녀의 풀린 신발 끈을 묶어준다. 이 땅의 남자 솔로들에게 고한다. 한 번의 행동이 백 마디 말보다 낫다.

● ‘귀 활짝’ 열고 들어야할 명곡

산에 오른 인우와 태희가 부르는 듀엣곡 ‘혹시 들은 적 있니’. ‘내가 세상에 오기 전부터 여길 맴돌던 이 바람의 노래/혹시 들은 적 있니’하는 가사가 멜로디 못지않게 아름답다. 두 사람의 운명을 살짝 예고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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