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에 드뷔시 세계에 흠뻑 빠져… 늦게 피었으니 더 오래 가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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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거장 게오르그 솔티에게 발탁된 佛 피아니스트 장에플랑 바부제 e메일 인터뷰

첫 내한 공연을 앞둔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에플랑 바부제. 그는 “피아니스트는 고독의 본질에 다가가 있는 사람이다. 음악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수다를 나누거나 실내악 연주를 하면서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성남아트센터 제공
첫 내한 공연을 앞둔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에플랑 바부제. 그는 “피아니스트는 고독의 본질에 다가가 있는 사람이다. 음악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수다를 나누거나 실내악 연주를 하면서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다. 성남아트센터 제공
프랑스 태생의 피아니스트 장에플랑 바부제(51)는 대표적인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연주자다. 남들처럼 신동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부터 주목 받은 연주자가 아니다. 꾸준한 정진과 분투로 서른이 넘어서야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중년에 만개해 무르익은 연주를 펼쳐 보이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감칠맛 나는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라는 바부제가 처음으로 한국 무대를 찾는다. 내한을 앞둔 그를 e메일로 만났다.

내한 프로그램은 그를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만들어 준 레퍼토리로 짜여졌다. 드뷔시의 ‘전주곡’과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를 들려준다. 두 인상파 작곡가의 대표작이다. 그는 “라벨과 드뷔시 중 누구 하나를 고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했다.

“두 사람은 내게 전혀 다른 작곡가이고, 이 둘을 한 무대에서 연주하는 건 모험입니다. 라벨을 연주할 때는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 느끼고, 드뷔시에서는 나 자신을 음악가라 여기지요. 라벨 음악에는 프랑스적인 섬세함이 있고,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요. 반면 드뷔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난해하죠. 35세에야 겨우 이해하고 눈물을 흘렸으니까요.”

바부제의 피아노는 수채화를 그리듯 색채감 넘치는 음색과 섬세한 선율, 역동하는 리듬, 크리스털 같은 청명함과 안개 낀 듯한 몽환적 분위기를 절묘하게 넘나든다는 평을 받는다. 바부제는 “어린 시절 피아노와 오보에, 타악기를 함께 배웠다. 온몸을 관통하는 오보에의 선율, 리듬으로만 돌진하는 팀파니의 에너지, 이 두 악기를 중재하는 건 피아노였다”고 말했다.

“연습을 좋아합니다. 책꽂이를 가득 채운 악보를 보면 의욕이 샘솟아요. 내 인생 동안 저 수많은 걸작을 얼마나 손끝으로 가져올 수 있을지…. 잠자리에 누워서도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연습하면 아내가 자꾸 놀려요.”

이 학구적인 피아니스트에게 빛을 선사한 것은 지휘의 거장 게오르그 솔티(1912∼97)였다. 바부제는 24세 때 독일 쾰른 베토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이듬해 미국 뉴욕 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션을 통해 데뷔했다. 낯선 무대에서 낯선 이들을 만나는 것이 신기했지만 그저 그런 날들이 10여 년간 이어졌다.

서른세 살 때인 1995년 바부제는 스위스에서 솔티를 만났다. 1991년 시카고 심포니 음악감독을 사임한 솔티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발하게 객원 지휘를 하던 시절이다. 솔티 자신이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눈에 띈 것처럼, 솔티는 바부제를 발탁했다.

“레퍼토리, 연주법, 해석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솔티와 나눴습니다. ‘조급해 하지 마라. 깊이 있게 공부하고, 꾸준히 레퍼토리를 넓혀 가라’라고 늘 말씀하셨죠. 1998년 파리와 로마에서 같이 연주하자고 하셨지만, 1997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함께 무대에 오를 수는 없었어요.”

바부제는 ‘솔티의 마지막 발견’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솔티 대신 피에르 불레즈가 이끄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바르토크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하며 날개를 달았다. 그는 “솔티, 스뱌토슬라프 리히터(피아니스트)도 상대적으로 뒤늦게 세계 무대에서 인정 받았다. 늦게 피는 꽃이 더 오래 간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5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3만∼10만 원. 1544-8117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장에플랑 바부제#피아니스트#게오르그 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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