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상큼발랄 OST, 후텁지근 무더위 한방에 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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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초연 ‘하이스쿨뮤지컬’ ★★★☆

‘하이스쿨뮤지컬’의 고독한 악역 샤페이(린지·왼쪽)와 라이언(유승엽) 남매. 주연 못지않은 능수능란한 노래와 연기로 극 전체에 활기를 더한다. CJ E&M 제공
‘하이스쿨뮤지컬’의 고독한 악역 샤페이(린지·왼쪽)와 라이언(유승엽) 남매. 주연 못지않은 능수능란한 노래와 연기로 극 전체에 활기를 더한다. CJ E&M 제공
마흔을 코앞에 둔 독신남이다. 토요일 오후 추적추적 내리붓는 비를 헤치고 홀로 이태원 공연장에 찾아갔다. 매표소 옆 포스터에는 주연을 맡은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와 f(x) 멤버들 얼굴이 한가득. 자리에 앉으니 양쪽 모두 초등학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 관객이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어색한 상황의 불편함은 막이 오르고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말끔히 사라졌다. 익숙한 듯 뻔하지 않은 경쾌한 멜로디가 어깨 힘을 빼고 등받이에 슬그머니 몸을 편히 기대게 만들었다. ‘아, 디즈니월드에 들어왔구나.’ 익숙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그곳.

2006년 1월 20일 오후 8시 미국 디즈니채널에서 98분짜리 TV용 뮤지컬 영화 ‘하이스쿨뮤지컬’이 처음 방영됐을 때 제작비 420만 달러(약 47억 원)의 이 소박한 복고풍 하이틴로맨스가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키리라 기대한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이 작품은 그해 에미상 안무상과 최우수청소년프로그램상, TV비평가협회 최우수프로그램상, 빌보드뮤직어워드 올해의 OST앨범상을 쓸어 담았다. 두 개의 속편 제작이 이어졌고 미국 50개 도시 콘서트투어 전회 매진 열기에 힘입어 2007년 8월 시카고에서 뮤지컬 버전이 첫선을 보였다.

이야기는 전혀 새롭지 않다. 존 트래볼타와 올리비아 뉴턴존 주연의 1978년 뮤지컬영화 ‘그리스’를 빼박았다. 방학 캠프에서 눈 맞은 10대들이 여학생의 우연한 전학을 계기로 재회하지만 주변 친구들의 훼방으로 슬픈 오해에 빠졌다가 사랑을 확인한다는, 뻔뻔할 정도로 뻔한 스토리. ‘그리스’ 뮤지컬 버전 연출과 안무를 맡았던 제프 캘훈이 시카고 초연을 연출해 혐의를 스스로 인정했다.

승인(勝因)은 음악이다. TV영화의 감독은 ‘더티 댄싱’(1987년) 안무 담당으로 경력을 시작한 케니 오테가. 2009년 ‘디스 이즈 잇’으로 마이클 잭슨 팬들에게 최고의 작별인사를 선물한 그는 세상의 위대한 베스트셀러가 죄다 결국 흔해빠진 사랑 얘기일 뿐임을 잘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뮤지컬은 이 빼어난 영화 OST에 두 개의 노래만을 더했다.

밀도 높은 노래에 시종 귀가 즐겁다. OST 수록곡 9곡이 한꺼번에 빌보드 싱글 차트에 올랐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인공인 농구부 주장 트로이(강동호)와 과학부 모범생 가브리엘라(루나)를 비롯한 젊은 배우들은 ‘피 끓는 고교생의 에너지’를 매끄러운 연기와 목소리로 넘치거나 모자람 없이 던져준다.

중요한 ‘스펙’이 될 눈앞의 성취를 우정을 위해 포기하는 10대들의 이야기. 2013년의 관객이 수긍하기 어려운 판타지라 비웃을 수 있다. 하지만 막이 내릴 무렵, 마흔 목전의 독신남과 양쪽 객석의 두 초등학생은 함께 웃으며 배우들의 손짓에 따라 신나게 박수치고 있었다. 시카고 초연 당시 뉴욕타임스는 “고등학교의 끔찍한 현실과는 한참 먼 이야기, 그런 현실을 바꿀 작은 영감과 위안을 주는 이야기”라고 썼다.

려욱 이재진 오소연 초아 선데이 린지 유승엽 출연. 9월 1일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1588-0688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하이스쿨뮤지컬#디즈니월드#영화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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