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 달진 않지만 자꾸 들으면 맛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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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연주 마치는 임헌정 부천필 상임지휘자

임헌정 부천필 상임지휘자를 두고 부천필 직원들은 “젊은 날을 부천필에 다 바쳤다”고 말한다. 2009년과 2011년 컨디션 난조로 무대에 서지 못했던 그는 “걷기 운동, 밥 반 공기, 물 마시기, 정기적으로 의사 만나기를 잘 지키려고 한다”고 했다. 그가 지휘하는 손동작을 합성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임헌정 부천필 상임지휘자를 두고 부천필 직원들은 “젊은 날을 부천필에 다 바쳤다”고 말한다. 2009년과 2011년 컨디션 난조로 무대에 서지 못했던 그는 “걷기 운동, 밥 반 공기, 물 마시기, 정기적으로 의사 만나기를 잘 지키려고 한다”고 했다. 그가 지휘하는 손동작을 합성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2007년 시작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9곡) 연주 시리즈가 다음 달 대장정을 마친다. 이날 연주회는 부천필 창단 25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1988년 겨울, 냉랭하고 눅눅한 지하연습실에서 단원 20여 명으로 출발한 부천필은 이듬해 36세의 임헌정 서울대 교수(60)를 첫 상임지휘자로 맞이한 이래 지금껏 함께 걸어왔다. 국내 교향악단 역사상 최장수 상임지휘자다. 1971∼1990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이끌었던 정재동이 그 다음의 장수 지휘자다. 그만큼 부천필의 얼굴이었던 임 교수는 이번 연주회를 앞두고 내년 25년 임기를 채운 뒤 부천필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부천필은 1999∼2003년 국내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10곡) 연주로 주목 받으며 교향악단 명가로 부상했다. “말러 교향곡은 흥행이 어려우니 포기하라”는 충고가 빗발치는 가운데 1999년 11월 첫 공연 유료 객석 점유율 54.8%로 시작해 2003년 11월 마지막 공연 유료 객석 점유율 76.4%를 기록했다.

6년 전 브루크너 시리즈의 문을 열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브루크너 교향곡은 재미가 없고 연주시간이 길어서 흥행이 안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프로그램을 짤 때 국내 공연 기획사들은 몇 가지 레퍼토리 옵션 중 브루크너를 거의 고르지 않는다. 해외 악단이 그동안 한국 무대에서 브루크너 교향곡을 연주한 것은 아홉 번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왜 브루크너였나요.

“산이 있어서 산을 오르는 것처럼, 브루크너가 있으니까요.(웃음) 브루크너는 짭짤하거나 달지 않아서 금방 맛있진 않아요. 진가를 느낄 때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좋은 걸 아는 사람이 전도사로 나서야지요.”

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여행 때 일화를 소개했다. 오스트리아인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친구가 걸려온 전화를 받은 뒤 말했다. 절친한 지인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는데 브루크너 7번을 들어야겠다고.

“브루크너는 친구 같은 곡이에요. 힘들 때 곁에서 위로해 주고 용기를 줍니다. 그런 음악이 좋은 음악이고 예술의 기본 기능과 맞닿아 있지요. 그래서 브루크너를 연주합니다. 언젠가는 관객이 브루크너를 좋아해 주지 않을까요.”

7월 24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부천필과 임헌정은 브루크너 교향곡 가운데 가장 대작으로 꼽히는 8번을 피날레로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브루크너 전곡 시리즈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예술의전당에서 기획하는 ‘그레이트 컴포저 시리즈’로 내년 11월부터 3년 프로젝트로 다시 한 번 사이클을 돌 계획이다.

―24년간 이끌어온 부천필을 표현하는 한 단어는 무엇일까요.

“팀워크. 오래도록 같이 호흡한 악단에서는 연륜 있는 소리가 납니다. 금방 만든 겉절이가 아니라 푹 익은 소리지요. 단원들끼리 인간적으로 친하고 신뢰가 두터울 뿐만 아니라 연주가 잘 안될 때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요. 안 되면 해내려고 하고 극복하려고 하는 그룹 멘털리티지요. 내가 시킨다고 되겠어요? 마음은 누가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는 “좋은 교인이 좋은 목사님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좋은 단원들이 긴 세월 동안 나를 잘 봐줬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부천필과의 동행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부천필 상임지휘자가 1년 단위 위촉직이었는데 3년 계약직으로 2년 전에 조례를 바꿨습니다. 내년 12월 31일이면 계약이 끝나는데 재계약을 안 할 겁니다. 부천필과 15년을 지낸 다음부터 전용홀을 지으면 물러나려고 했는데, 기약도 없고…. 후배들에게 욕먹기 전에(웃음) 내가 직접 선을 긋는 것이 본분이라 생각해요. 어떤 형태든 연결고리를 가지고 뒤에서 지원할 겁니다.” 1만∼3만 원. 032-625-8330∼2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임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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