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시장에 가면 떠오르는 얼굴들… 아, 푸근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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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분 씨네 채소가게/정지혜 글, 그림/52쪽·1만1000원/사계절

연작 그림책 ‘일과 사람’ 가운데 열세 번째 책입니다.

동이 할머니가 바로 ‘순분 씨’입니다. 할머니 혼자 채소가게를 꾸리기엔 힘들어 보인다고요? 물론 동이네 부모님도 함께하십니다. 새벽같이 도매시장에서 채소를 사와 수십 년 알고 지낸 동네 사람들에게 매일 신선한 채소들을 선보입니다.

순분 씨네 채소가게에는 단골이 많습니다. 몸에 좋고 싱싱한 채소를 사가는 손님들은 이런 가게가 있어 행복합니다. 그런 손님들과 정담을 나누며 환하게 웃는 순분 씨도 행복합니다. 성실하고 순하게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할머니와 아빠, 엄마를 보며 자라는 동이가 행복한 건 말할 것도 없겠지요.

오랫동안 도매시장에서 장사를 한 부모님을 보고 자란 작가에게 시장은 집보다 더 편안했던 모양입니다. 아기자기하게 그려낸 시장 구석구석이 생생하고 평화롭습니다. 시장이 열리는 페이지를 읽다 보면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또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을 돌아다닌 기억을, 그 안에서 일하고 먹고 자고 놀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뜻하고 유쾌한 풍경으로 살려냈습니다.

중국집 주방장과 소방관 우체부 한의사 농부 교사 어부 뮤지컬배우…. 2010년 ‘짜장면 더 주세요’로 첫발을 내디딘 연작 ‘일과 사람’은 늘 우리 곁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들려줍니다. 작가들은 저마다 직접 겪었거나 오랫동안 주변을 맴돌며 취재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그런 만큼 책 한권 한권이 담고 있는 정보가 탄탄합니다.

풍성한 정보를 푸근한 이야기에 실어 세심하고 영리하게 편집된 ‘일과 사람’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깊은 고민과 정성에 감탄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짜장면을 먹을 때면 강희 아버지의 손을 기억하고, 편지를 받을 때면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한약이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며, 순분 씨네 채소가게와 똑 닮은 우리 마을 채소가게를 웃으며 기웃거릴 수 있게 해줍니다.

애초에 20권으로 기획한 이 시리즈가 세상 모든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다 알려줄 때까지 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
#일과 사람#순분 씨네 채소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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