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조카를 반년 고생시켜 논어 뗐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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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관직 오르기전 친필추정 편지…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 공개

음력 7월 말. 아직 늦더위가 남았으나 환절기 밤공기는 벌써 쌀쌀하다. 뜻한 바 있어 객지로 떠났어도 어찌 부모 형제의 안부가 궁금치 않을까. 과거를 앞둔 처지에도 몇 차례나 편지를 부쳤건만 답신은 오질 않고….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온통 스산하고 아련한 마음이 전해진다. 숨이 다하던 순간도 나라를 걱정하던 충정에 감읍한 세상은 그를 성웅(聖雄)이라 불렀다. ‘신의 반열’로 존경하다 보니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다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순신이 효성 지극한 자식이자 우애 넘치는 동생이란 것을 보여 주는 고문서(사진)가 최근 발견됐다. 지난달 28일은 충무공 탄생 468주년.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전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교수)은 1일 이순신이 젊은 시절 쓴 친필 편지로 추정되는 문서를 공개했다. 이순신이 관직에 오르기 전에 쓴 편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적이 없다.

가로 40.0cm, 세로 21.5cm의 한지에 17행 149자가 적힌 편지에는 성을 뺀 ‘순신(舜臣)’이라는 서명이 명확하다. 노 소장은 “난중일기와 이전 서간에서 드러난 왕희지 초서체의 충무공 필법이 확실하다”며 “특히 이름과 ‘何(어찌 하)’ ‘之(갈 지)’ 글자가 거의 똑같다”고 설명했다.

노 소장에 따르면 편지는 이순신이 1576년 초시(初試·과거의 첫 시험)를 보기 직전인 31세 때 보낸 것으로 보인다. 맏형 이희신(1535∼1587)에게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편지에는 형님이 건강 문제로 붓을 잡는 게 힘들까 우려하는 내용도 담겼다.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다는데 가족은 무사한지, 부모와 장인의 안부는 어떠한지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은 변변치 못하니 형이 두루 살펴 달라는 간곡한 부탁도 잊지 않는다.

이순신이 젊은 시절 조카에게 ‘과외’를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반년 동안 논어를 가르쳐 한 권을 뗐는데, 이제 자신이 집을 떠났으니 조카의 공부가 걱정된다는 대목이 나온다. 조카는 노량해전 당시 충무공 곁을 지켰던 이완(1579∼1627)과 열세 살에 제술과(製述科·과거의 한 종류)에서 수석을 차지한 이분(1566∼1619)이 유명하나 이 중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노 소장은 최근 자신의 신간 ‘이순신의 승리 전략’을 통해 충무공이 다양한 경전과 병서는 물론이고 삼국지도 탐독했던 다독가였다고 밝혔다. 노 소장은 “젊은 삼촌이 조카에게 직접 학문을 가르쳤으니 이미 상당한 학문적 조예를 갖췄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순신#친필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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