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철학은 두레-향약서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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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조차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이 전해질 만큼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삶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미래를 위한 선택 동반성장’(정운찬·21세기북스·2013)

요즘 정치권의 핫이슈는 단연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가 무엇인가. 서울대 총장, 국무총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정운찬 전 총리는 경제민주화가 헌법 조항에도 나와 있는 정부의 당연한 책무라고 말한다. 헌법 제119조 제2항에도 ‘대기업에 쏠린 부의 편중 현상을 법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법에 의한 강제만이 해법은 아닐 터, 저자는 “경제민주화란 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 노동자, 소비자들이 대등한 관계가 되는 사회”라며 “계약할 때 ‘을(乙)’인 중소기업이 죽어나가는 ‘을사조약(乙死條約)’을 없애기 위해서는 ‘더불어 같이 성장하자’는 동반성장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한국 기업 수의 99%를 차지하고 고용의 8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 대다수 국민의 삶이 평온할 리 없다. 정 전 총리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구체적인 동반성장 방안으로 협력이익 배분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정부 발주의 중소기업 중심화 등을 제시했다.

대학(大學)에 ‘畜馬乘 不察於鷄豚(휵마승 불찰어계돈)’이라는 말이 나온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는 사람인 휵마승(畜馬乘)은 닭과 돼지를 기르는 일에 대해서 살피지 말라, 즉 닭과 돼지를 기르지 말라는 뜻이다. 삼공(三公), 육경(六卿) 등의 높은 벼슬이 아닌 낮은 계급의 마승(馬乘)이지만 대부가 되어서도 닭과 돼지를 기른다면 백성들의 생업을 빼앗게 되니 삼가라는 뜻이다.

막 대부가 되어 어쩌면 형편이 더 어려워지더라도 낮은 계층, 즉 중소기업의 생업을 빼앗지 않는 철학, 이것이 오랫동안 한국에서 이어진 두레나 향약의 ‘더불어 산다’는 공동체의 가치가 아닐까. 수천 년 동안 한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유전자처럼 전해 내려오는 정서는 나 혼자 배를 불리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과 더불어 사는 것이었다. 동반성장은 그것을 다시 찾자는 것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서진영 자의누리경영연구원 원장
#철학#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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