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퍼홀릭’이라 불리는 쇼핑 마니아들에게는 공통적인 성향이 있다. 바로 수집가 기질이다. 대부분 처음엔 패션 관련 아이템을 다양하게 섭렵하다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한 아이템을 집중적으로 모으게 된다.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성의 경우 그 컬렉션의 귀결점이 구두 가방 주얼리인 경우가 많고, 남성은 시계일 때가 많다.》
유명 패션 브랜드가 최근 선보인 최고급 시계 라인. IWC for 프라다, 디오르 옴므, 랄프 로렌, 이자벨 마랑, 돌체&가바나(왼쪽부터). 조엘 킴벡 씨 제공
이들이 결국 집착하게 되는 아이템은 한정판 또는 빈티지 아이템으로 아무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들의 수집광적인 쇼핑 습성 덕에 불황에도 관련 시장이 명맥을 유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화되는 불황에 고심이 깊은 패션 브랜드들이 침체된 경기에도 아랑곳없이 구매력을 보이는 수집가들을 잡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치는 것은 당연지사다. 특히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브랜드들이 이 시장을 점유하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가 시계 브랜드들을 앞다퉈 론칭하고 나선 것이다.
시계 전문 브랜드가 아닌 패션 브랜드들이 시계 라인을 전개하는 것이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급 브랜드인 에르메스, 루이뷔통, 샤넬 등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자사의 시계 라인을 판매해 왔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최고급 시계 시장에서 다수의 마니아층까지 확보할 정도로 나름의 성공을 거뒀지만 이들 역시 처음 시계 시장에 뛰어들 당시 높은 진입장벽을 경험해야 했다. 시계 시장에선 패션의 이미지만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성과 고급스러운 장인정신 등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들에게 시계는 하나의 정밀한 기계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통한다. 따라서 패션 브랜드 특유의 가벼운 느낌이 스며든 것이 오히려 시계 라인을 전개하기에 방해가 됐다.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 브랜드 프라다는 독자적인 시계 라인을 설립하기보다 유서 깊은 스위스 시계 명사 IWC와 손을 잡는 명민함을 보였다. IWC와의 협업으로 기술과 패션성 모두를 잡고자 한 것이다. 디오르 옴므도 기존 디오르의 여성시계 라인과는 별개로 스위스의 또 다른 시계 브랜드 제니스와 협업한 한정판 시계를 판매하고 나섰다.
패션 브랜드와 기존 스위스 시계 명가와의 협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랄프로렌과 피아제의 만남이다. 미국판 보그의 편집장이자 패션계 유명인사인 애나 윈투어가 “내가 가장 갖고 싶은 시계”라고 극찬한 랄프로렌의 시계 라인은 론칭한 지 몇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패션 브랜드가 최고급 시계 라인을 속속 론칭하고 나서면서 다시 화제가 된 것은 2012년부터다. 심플하지만 독특한 패션 세계로 사랑받고 있는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이자벨마랑이 지난해 자신의 이름을 건 시계를 발매했다. 전 세계 500개 한정판매라는 전략으로 한국도 2개를 수입했다. 클래식한 파텍필립 시계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사각형의 18K 골드 시계로 개당 가격에 1만 달러(약 1070만 원)를 훌쩍 뛰어넘는데도 발매 즉시 판매가 완료됐다.
얼마 전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듀오 브랜드 돌체&가바나는 오랫동안 사랑 받아왔던 세컨드브랜드(디퓨전 라인) D&G를 정리하면서 D&G의 시계라인도 정리했다. 그러나 대신 ‘돌체&가바나’의 이름으로 2만 달러(약 2000만 원)가 넘는 최고급 남성 시계라인을 과감히 론칭했다. 내부적으로 자금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속에서 다소 큰 모험을 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디자이너 도메니코 돌체는 한 인터뷰를 통해 자신감을 내비쳤다. “클래식한 롤렉스시계에 카르티에의 팔찌를 찬 스타일을 돌체&가바나 시계 하나로 대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유명 패션 브랜드들의 시계는 마냥 고급스럽기만 하거나 클래식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의 정수가 담겨 있어 매력적이다. 새해엔 새롭게 정진하는 이들의 라인업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보는 건 어떨지.
조벡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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